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천만 시니어 시대, 백만 치매 환자의 시대. 고령화는 더 이상 통계가 아닌 우리 삶의 현재다. 이러한 현실 한가운데서 치매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메모리_Clock of Life. 오는 3월 6일 오후 7시 50분, 용산 아이파크몰 CGV 18관에서 관계자 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이는 이 작품은 2026년 가을 정식 개봉을 앞둔 화제작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는 공연그룹 드림뮤드의 대표이자 배우, 연출가, 극작가로 44년을 무대에서 살아온 김한나다. 환갑을 넘긴 시니어 예술가가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메모리_Clock of Life'는 단순한 ‘도전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생애와 상실, 그리고 성찰을 관통한 깊은 고백이자 시대적 질문이다.

김한나 감독은 2014년 창단한 드림뮤드를 통해 역사뮤지컬 〈바람처럼 불꽃처럼〉(2015), 멜로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2023), 코믹연극 〈두바이 키스아카데미〉(2024) 등을 제작하며 홍대와 대학로에서 탄탄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인간관계와 가족 서사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축이다.
이번 영화는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시즌3를 원작으로, 원작자인 김 감독이 직접 각색해 스크린 문법으로 확장했다.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감정의 결을 카메라로 옮기며, 인물의 내면을 더욱 세밀하게 포착한다.

촬영 인병훈, 라인프로듀서 장진백호, 조명 정상갑, 색보정 최석원, 사운드 김홍중, 음악 황지혜 등 충무로 중견 제작진이 합류해 완성도를 높였다. 배우 로렌조박, 윤서하, 김정수, 김현주, 최윤정, 박재임, 김유진, 최시영 등 30여 명의 배우들이 참여해 세대 간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의 출발점은 개인적 체험이다. 김한나 감독은 9년에 걸친 모친의 치매 간병을 겪었다.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는 그 시간을 단순한 고통이 아닌 ‘해석의 전환’으로 받아들였다.

“인생은 해석하기에 달렸다”는 그의 오랜 지론은 이번 작품의 핵심 메시지다. 치매를 불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기억을 덜어내며 가볍게 생을 마무리하는 또 다른 과정으로 바라본다.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뒤바뀌고, 세대가 교체되는 ‘생의 환승역’이라는 은유는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영화 속 치매 어머니 ‘수미’의 독백은 관객의 심장을 건드린다.
“나는… 내 생각이 살아 있을 때, 스스로 모든 걸 선택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살아 있을 때 말이야. 잊어버리는 거? 두려워하지 마. 그건 선물이란다. 가볍게 오라고 지워주시는 거지… 고맙다, 모두들.”

이 대사는 치매 가족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남겨진 세대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부모를 이해하고, 또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김 감독은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슬프고 아프게 어른이 되어, 제 자식을 다시 가르치는 진짜 부모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고백은 영화의 정서를 압축한다.
'메모리_Clock of Life'는 치매를 겪는 부모의 이야기이자, 남겨진 자식 세대의 성장 서사다. 질병을 통해 분노와 자기연민을 지나 성찰과 공익적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영화 곳곳에 스며 있다.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니어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기 쉽다. 김한나 감독은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시니어는 경험과 통찰, 그리고 기억을 자산으로 가진 ‘블루칩’ 세대라는 것이다.
“AI 시대에 영화는 상상과 표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중적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삶을 통해 더 좋은 영향력을 동시에 전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영화는 또 하나의 유산이다. 자녀와 관객에게 남기는 기억의 선물, 그리고 실수와 후회를 이해하게 만드는 성숙의 기록이다.
'메모리_Clock of Life'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치매는 과연 불행이기만 한가. 부모와 자식은 어떻게 서로를 완성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늙어갈 것인가.

60대의 신인 감독이 던지는 이 물음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긴 세월 무대를 지켜온 예술가의 삶이 응축된 만큼 묵직하다. 삶의 최고 정점이라 불리는 60대 봉우리에서 다시 시작한 창작의 도전. 그 시계는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흐르고 있다.
올가을 정식 개봉을 앞둔 '메모리_Clock of Life'가 천만 시니어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울림을 남길지 주목된다. 기억은 사라질지라도, 삶의 의미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스크린 위에서 천천히 빛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