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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하나의 포도, 두 개의 얼굴' 고려명 개인전 'DUAL', 응시를 통해 존재를 사유하다

포도로 사유하는 생성과 소멸의 경계
갤러리나우에서 응시로 완성되는 존재의 기록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우리는 사물을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려는 데 익숙하다. 사물은 설명될 수 있고, 규정될 수 있으며, 명확한 상징을 통해 빠르게 소화된다. 그러나 사진작가 고려명의 작품 앞에서 이 익숙한 인식의 습관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의 사진 속 포도는 단일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머무는 상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고려명 개인전 'DUAL'은 이러한 이중적 존재의 상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번 전시는 서울 갤러리나우에서 개최되며, 동일한 포도를 같은 응시에서 출발시키되 블랙과 멀티컬러라는 두 개의 형식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대비나 분리의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방식에 가깝다. 블랙의 화면 앞에서 시선은 멈추고, 멀티컬러의 화면 앞에서는 시선이 흔들린다. 관객은 두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대상의 의미보다, 자신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고려명의 작업에서 포도는 상징 이전의 상태로 존재한다. 포도는 오랫동안 풍요와 생명, 번영을 상징해 왔지만, 그의 사진 속 포도는 그 어떤 의미도 먼저 주장하지 않는다. 극도로 근접한 촬영과 대형 인화를 통해 드러난 표면은 사실적이지만,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주름진 껍질, 분가루의 입자, 얼어붙은 흔적들은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정보가 아니라, 시간과 존재가 스며든 흔적으로 다가온다. 지나치게 선명해진 디테일은 오히려 사물을 이해하게 하기보다, 우리가 대상을 소비하듯 바라보아 왔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대상을 '담는 행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금박으로 감싼 포도알은 조형적 개입을 통해 재현의 질서를 벗어나고, 컬러가 칠해진 포도는 재현 너머의 감각적 토대로 기능한다. 작가노트에서 고려명은 “있는 그대로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지점이었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그 지점을 의도적으로 벗어났다”고 밝힌다. 이 두 방향은 단절이 아니라, 작가가 앞으로 나아갈 작업 세계를 예고하는 단초다.

 

기술적 완성도 또한 이 작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고려명은 디지털 환경이 고해상도를 손쉽게 보장하는 시대에도,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 촬영 방식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작업 방식을 고수해 왔다. 초기에는 우주 관측용 특수 필름을 사용할 만큼 해상도와 밀도에 집요했다. 그 결과 몇 미터에 이르는 대형 인화에서도 이미지의 붕괴는 없다. 확대된 포도 한 송이는 더 이상 과일의 스케일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풍경, 때로는 우주의 표면처럼 다가온다.

 

갤러리나우의 전시 공간은 이러한 작업의 밀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이미지들은 관객의 시선을 조용히 붙잡고, 그 시선이 머무는 시간을 허락한다. 큐레이터 송지원은 이번 전시에 대해 "'DUAL'은 둘로 나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가진 두 개의 얼굴을 끝까지 지켜보는 응시의 기록"이라며 "이 전시는 답을 제시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설명한다.

 

평론가 김윤섭은 고려명의 사진을 두고 "보이는 것 너머가 아니라, 보이는 것 안에서 본질을 더듬는 태도"라고 평한다. 그의 사진은 '잘 찍힌 이미지'라기보다, 존재를 향한 욕망이 끝내 이미지로 응고된 흔적에 가깝다.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극도의 디테일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실존의 표면을 사유하게 만드는 감각의 장으로 작동한다.

고려명의 포도는 풍요를 말하지도, 소멸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시들거나 얼어붙은 포도 역시 죽음의 표지가 아니라, 존재가 다른 국면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충만과 공허,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머무는 이 양가성 속에서 포도는 하나의 실존적 은유가 된다. 관객은 이 이미지 앞에서 사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한편 'DUAL'은 시각적 쾌락을 제공하는 전시가 아니다. 대신 응시의 태도를 묻는 전시다. 끝까지 바라보는 일, 쉽게 규정하지 않는 일, 존재 앞에서 성급한 결론을 유보하는 일.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사진이 기록의 도구를 넘어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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