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조정일 문화전문기자 | 예술은 때때로 삶의 상처를 고백하는 언어가 아니라, 상처 이후를 견디게 하는 새로운 문법으로 출현한다. 홍금봉(aileen) 작가의 회화가 그러하다. 그의 작품은 단지 감정의 흔적을 화면에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무너진 내면을 다시 세우고, 침잠했던 생의 에너지를 일으켜 세우는 정신의 복원술에 가깝다.
2026년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프랑스 파리 카루젤 드 루브르(Carrousel du Louvre) 에서 열린 ‘Art Shopping 2026’에서 홍금봉 작가는 작품 〈봉인해제〉와 〈치유〉를 선보이며 관람객과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올해의 아티스트상(Artist of the Year)’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미술이 지닌 정서적 깊이와 회복의 미학을 국제무대 위에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이번 수상은 단순히 한 작가의 해외 전시성과를 넘어선다. 그것은 내면의 균열과 회복, 억눌림과 해방, 상처와 윤리라는 오늘의 보편적 문제를 회화라는 매체 안에서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홍금봉의 작품은 강한 시각적 인상으로 먼저 다가오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관객의 감정 속에 서서히 파고드는 정신적 울림을 품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이번 파리 무대에서 그의 작업이 특별히 호응을 얻은 이유일 것이다.
〈봉인해제〉는 제목부터 강력하다. 이 작품은 억압된 감정, 멈춰 있던 감각,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던 내면의 힘이 어느 순간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작가의 말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끓어오르는 동기를 일깨워 준 어떤 존재와 순간”은 비틀리고 휘어진 감정의 척추를 곧게 세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생성한다. 여기서 ‘봉인’은 단순한 억압의 상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잠시 멈춰 두어야 했던 감각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제’는 파괴가 아니라 재탄생이다.
홍금봉은 이 작품에서 내면의 잠재력과 감각의 부활을 단순한 희망의 수사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오랜 침묵과 인내를 통과한 뒤에야 가능한 일인지를 암시한다. 그래서 〈봉인해제〉는 화려한 해방의 선언이 아니라, 존재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숭고한 복귀의 장면처럼 읽힌다. 이 회화는 상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지나온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더 깊고 단단한 에너지의 탄생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회복의 결과가 아니라, 회복이 시작되는 찰나를 붙잡은 정신적 기록이다.
이에 비해 〈치유〉는 보다 윤리적이고 성찰적인 결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편협한 시선과 허위의 규범 속에서 지친 마음과 정신이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작가는 치유를 단순한 위로나 감정적 안정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이타심, 그리고 선한 노력을 지속하려는 의지 속에서 비로소 자기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치유는 수동적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윤리적 실천이며, 내면을 다시 이상적이고 충만한 상태로 이끄는 자기 수련에 가깝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의 동시대 미술 안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최근 예술은 상처의 표면을 드러내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어떤 윤리적 태도로 통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종종 소극적이었다. 홍금봉의 〈치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차별성을 획득한다. 그는 치유를 감상적 언어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인간이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선의와 인내, 그리고 자기 회복의 의지로 번역한다. 이 작품이 지닌 울림은 그래서 단순한 공감의 차원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정신적 태도를 환기하는 데 있다.
이번 파리 전시에서 〈봉인해제〉와 〈치유〉가 함께 놓였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한 작품이 내면의 잠재력이 깨어나는 해방의 순간을 말한다면, 다른 한 작품은 그 힘이 결국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자가 생의 에너지를 다시 점화하는 불씨라면, 후자는 그 불씨가 타인을 해치지 않고 스스로와 세계를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윤리적 중심축이다. 곧 홍금봉의 예술 세계는 해방과 치유, 힘과 선의, 각성과 회복이라는 두 축 위에서 완성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올해의 아티스트상’ 수상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국제 아트페어 현장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종종 시각적 자극이나 즉각적 소비 가능성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홍금봉의 작업은 그와 반대로, 화면 안에 응축된 내면의 서사와 정신의 긴장, 그리고 인간 회복에 대한 성찰로 깊이를 만든다. 이는 단순히 ‘한국적인 정서’라는 익숙한 수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오늘날 세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소진, 균열, 윤리의 붕괴, 관계의 상실을 통과하면서도 인간 내부에 남아 있는 선한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파리 카루젤 드 루브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홍금봉의 회화가 호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이 장소는 여전히 새로운 감각과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무대다. 그곳에서 홍금봉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도달했다는 것은, 그의 회화가 언어와 국경을 넘어서는 정서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억눌린 감각을 깨워내고, 상처 입은 정신을 윤리적으로 회복시키려는 그의 화면은 한국 작가 개인의 서사를 넘어, 동시대 인간의 보편적 초상으로 읽힌다.
결국 홍금봉(aileen)의 예술은 묻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자신 안의 감각을 봉인한 채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 봉인을 풀어낸 뒤, 그 에너지를 과연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그의 답은 분명하다. 해방은 파괴가 아니라 생성이어야 하며, 치유는 안락이 아니라 선한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단단한 미학적·윤리적 태도가 이번 파리 무대에서 홍금봉을 ‘올해의 아티스트’로 호명하게 만든 핵심 이유일 것이다.
홍금봉의 〈봉인해제〉와 〈치유〉는 그래서 단순한 전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작가가 삶을 통과하며 길어 올린 내면의 진실이자, 오늘의 세계에 건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제안이다. 무너진 시대일수록 예술은 더 깊은 인간성을 요청한다. 그리고 홍금봉은 이번 파리 전시를 통해, 그 요청에 응답할 준비가 된 작가임을 분명히 증명해 보였다. < 조정일 문화전문기자 = Seou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