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백남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텔레비전 모니터와 전자 이미지,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다. 그는 분명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며, 20세기 예술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이다. 그러나 이 확고한 이미지 뒤에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온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음악가 백남준'이다.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백남준: 전지적 음악가 시점'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백남준 예술의 출발점은 과연 어디였는가.
이번 전시는 백남준을 미술가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전에 ‘음악가’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단순히 음악적 요소를 차용한 전시가 아니라, 그의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사유의 뿌리를 음악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전시는 오는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백남준은 10대 시절 이미 작곡을 했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철학과 음악사를 전공했다. 바흐와 베토벤, 모차르트로 이어지는 고전음악의 구조와 질서는 그의 사고 체계를 형성한 중요한 토대였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존중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의심했다. 악보와 연주, 작곡가 중심의 위계 질서에 질문을 던졌고, 음악이 반드시 '소리'로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존 케이지와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폭발한다. 우연성과 침묵, 소음과 행위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케이지의 사유는 백남준에게 결정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음악은 더 이상 청각에 국한되지 않았고, 신체와 공간, 시간과 개념을 포함하는 총체적 행위가 됐다. 이후 쇤베르크, 요제프 보이스 등과의 교류 속에서 백남준의 예술은 음악을 넘어 퍼포먼스와 영상, 기술로 확장돼 갔다.
비디오아트는 이 과정의 결과였다. 전시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을 기술 중심의 혁신으로만 해석하기보다, 음악적 사고가 시각 예술로 전이된 결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백남준: 전지적 음악가 시점'이라는 전시 제목 역시, 음악가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따라가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누보 송정희 대표는 "백남준에 대한 전시와 평가는 늘 미술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음악가였던 백남준의 정체성을 통해 그의 예술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획됐다는 점에서 기존 전시들과 결을 달리한다. 음악과 미술 사이의 경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의지가 전시 전반에 스며 있다.
전시에는 설치, 드로잉, 사진 콜라주, 판화, 사진 등 약 17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고전음악의 권위를 전복하며 신체와 기술 속에서 음악을 재정의했던 초기 퍼포먼스 사진 작품은 백남준 예술의 급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악기를 파괴하거나 연주 행위 자체를 해체했던 장면들은 음악을 개념과 행위의 차원으로 확장시켰던 그의 실험정신을 증언한다.
또한 1963년 독일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기념하는 판화 작품은 청각 예술인 음악을 시각 언어로 치환하려 했던 그의 초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동양적 사유와 전자적 감수성이 결합된 평면 작품들 역시, 음악적 리듬과 시간성이 어떻게 시각적 구성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00년대 뇌졸중 이후 제작된 크레용 드로잉이다. 격렬한 퍼포먼스와 기술 실험 대신, 단순한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들은 백남준 예술의 말년을 관통하는 또 다른 음악성을 드러낸다. 빠른 속도와 충돌 대신 느린 리듬과 여백으로 향한 이 변화는, 음악가로서의 사유가 끝내 도달한 지점처럼 보인다.
지난달 열린 전시 오프닝 또한 이 전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일반적인 개막식 대신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는, 백남준이 작품 속에서 언급하고 재구성했던 고전 작곡가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레퍼토리가 연주됐다. 이는 음악이 그의 예술에서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끝내 놓지 않았던 중심축이었음을 환기시켰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도슨트 데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1월 17일, 24일, 31일 총 세 차례 진행되며, 송정희 대표가 직접 전시 해설을 맡아 차담과 함께 관람객과 소통한다. 작품 해설을 넘어, 음악과 미술의 관계를 사유하는 대화의 장이 될 예정이다.
'백남준: 전지적 음악가 시점'은 백남준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전시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의 이름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전시다. 비디오 이전의 백남준, 기술 이전의 사유, 그리고 음악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이 전시는 백남준 예술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좌표를 제시한다.
한편 갤러리 누보와 제주돌문화공원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도슨트 데이 참가비는 무료이나 제주돌문화공원 입장료는 별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