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제주돌문화공원 안에 자리 잡은 갤러리 누보(대표 송정희)가 오는 9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기획전 '춤이 있는 풍경'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종학, 김구림, 황인란 세 작가가 무용전문지 '춤'의 표지를 위해 그린 작품 4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단순한 미술 전시가 아니라, 춤이라는 원초적 에너지와 시각예술이 만나는 교차점을 보여주는 이번 기획은 무용사와 미술사 두 갈래의 흐름을 동시에 비추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1976년 창간된 월간 '춤'은 한국 무용계를 대표하는 전문지로, 창간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발간을 멈추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표지는 늘 미술가들의 몫이었다. 매년 한 명의 화가가 선정돼 1년간 12점의 표지를 맡았고, 화가들은 각기 다른 색과 선으로 춤의 율동과 정서를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잡지 속 '춤이 있는 풍경'이라는 칼럼은 화가들이 직접 글과 삽화를 통해 춤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풀어낸 코너였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누적된 표지화와 칼럼 그림은 500여 편에 이르며, 이는 2017년 창간 500호 기념 단행본 '춤이 있는 풍경'으로 묶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평론가 김종근은 이를 두고 "그림들만 모아 전시해도 한국판 '춤 그림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전통을 기초로, 한국 현대미술사의 굵직한 궤적을 남긴 세 화가의 표지 작품을 통해 춤의 세계를 다시금 조명한다.
출품작 가운데 '설악산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의 춤 연작은 1980년대 작품들로, 화려한 색채와 기운생동의 화면이 특징이다. 설악의 자연을 춤추는 듯한 필치로 그려온 김종학의 세계가 춤이라는 주제와 만나 한층 자유로운 에너지를 발산한다.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인 김구림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친 표지화는 강렬한 붓터치와 실험적 구성이 두드러진다. 실험영화, 해프닝,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든 그의 미술 언어가 춤과 만나 만들어낸 독특한 미학은 시대를 앞선 감각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올 한 해 '춤'의 표지를 장식한 황인란의 작품은 앞선 두 작가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감 속에서도 사유적이고 정적인 풍경을 담아내며, 춤의 동적 몸짓과 대비되는 내면의 울림을 드러낸다. 세 작가의 작품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면서도, 춤이라는 공통 주제 아래 인간의 몸과 정신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갤러리 누보 송정희 대표는 "녹록지 않은 출판 환경 속에서도 50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이어져 온 '춤'과의 인연이 전시로 이어지게 됐다"며 "비록 수많은 작품 중 일부만을 소개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의 발현인 춤의 흥과 율동, 심지어 멈춤의 아름다움까지 관람객이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춤' 발행인 조유현 대표 역시 "무용잡지 표지화가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고 전시로 확장된 것은 큰 기쁨"이라며 "춤으로 화가들을 끌어들였던 창간인 고(故) 조동화 선생의 혜안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이번 전시가 춤의 감동을 새롭게 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춤'의 표지를 장식한 작가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욱진, 천경자, 서세옥, 박노수, 최만린, 이만익, 변종하, 이대원, 김흥수, 백남준 등 이름만 들어도 한국 미술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참여해왔다. 이는 무용잡지가 단순히 춤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까지 품어온 매개체였음을 증명한다.
이번 기획전은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춤과 미술의 융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춤추는 인간의 몸짓이 화가의 붓끝을 통해 영원히 기록되고, 미술 작품은 다시 관람객의 몸과 감각을 일깨우며 춤처럼 움직인다.
한편 전시 기간 동안에는 작가와의 대화,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마련돼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다만 제주돌문화공원 입장료는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이번 기획전 '춤이 있는 풍경'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이 춤이라는 원초적 에너지와 마주하며 빚어낸 시각예술의 축적을 보여준다. 춤과 미술, 두 예술의 만남이 관람객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