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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뷰] 김한나 감독, "치매는 끝이 아니라, 가볍게 떠나기 위한 선물일 수 있다"

김한나 감독이 말하는 ‘메모리 – Clock of Life’, 기억과 사랑,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마지막
어머니의 기억에서 시작된 독립영화, 시니어의 사랑과 삶의 끝을 응시하다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독립영화 ‘메모리 – Clock of Life’는 치매를 단지 질병의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 작품은 기억이 사라져 가는 시간을 통해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삶의 마지막은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연출과 제작, 주연을 함께 맡은 김한나 감독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오래 묵은 죄책감과 질문, 그리고 사랑의 고백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영화의 시작점으로 어머니의 치매를 꼽았다. 그는 “10년 전 부친이 돌아가신 뒤 자녀들은 모르게 진행되던 친정어머니의 치매를 발병 3년이 지나서야 인지하게 됐다”며 “그때 나의 무신경이 너무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고, 우리 모두가 결국 치매 세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고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 어머니의 투병 경험은 영화 전반의 정서와 서사에 깊게 반영됐다. 그는 “어머니 치매와의 전쟁을 겪으며 치매가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또 환자의 예후에 따라 자녀가 어떤 마음으로 그 과정을 견뎌야 하는지를 작품 안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병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감정의 민낯까지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는 뜻이다.

김 감독이 치매와 기억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100만 치매환자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웃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모르고 산다”며 “노년 세대가 어떤 과정을 겪는지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 역시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이어 “치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식을 나누고 미리 대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하는 질문 역시 명확하다. 김 감독은 “과연 사람다운 삶의 끝은 어떤 형식을 가져야 하는가를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를 가진 존재이며, 자기결정과 책임, 배려를 실천할 때 비로소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 육체의 껍질만 남은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존재하는 삶, 그 존엄의 문제를 영화가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치매는 가볍게 떠나기 위해 하늘이 준 선물일 수도 있다’는 시선이다. 자칫 논쟁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문장에 대해 김 감독은 오랜 돌봄의 경험에서 나온 절박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매 환자 가족으로서 한집에서 돌본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고통이 있다”며 “특히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경우 환자 본인의 갈등도, 가족이 겪는 짓눌림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현실을 단지 저주로만 해석하면 버텨낼 수 없다고 보았다. 긍정적 해석이 필요했고, 환자에게도 의미 있는 자기 해석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치매 중기에 죽고 싶다는 고통을 반복해 호소하던 어머니에게 “잊어버리는 것은 편해지라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김 감독에게 기억은 인간 존재를 떠받치는 핵심 장치다. 다만 그는 기억만으로 인간이 완성된다고 보지 않는다. 기억은 망각과 짝을 이루어야 온전하다고 본다. 그는 “기억은 짐이면서도 선물이고, 망각은 짐이면서도 자유”라며 “둘 다 인간의 주요 장기 중 하나와도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 “고통이든 기쁨이든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기억이 없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경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기억은 우리에게 살아갈 심장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 Clock of Life’가 시니어 세대의 사랑을 정면에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노년에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과 가난의 극복, 그리고 외로움으로부터의 구원”이라며 “시니어는 사랑도 없고 미래도 없고 꿈도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오히려 오랜 삶의 아픔을 견뎌낸 완주자들에 대한 독해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시니어의 사랑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숙함이며, 영화에서는 치매에 걸린 옛 연인을 감당하는 이야기로 그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이 단지 한 편의 독립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반드시 논의해야 할 시니어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 “천만 시니어가 살아가야 하는 시대이고, 베이비부머 세대만 해도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며 “청장년 세대를 위한 꿈은 넘치지만 노년 세대의 꿈은 지워가는 사회 분위기로는 긴 시니어 시대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니어가 완숙의 힘으로 읽혀져야 청년들도 장년으로 가는 삶을 긍정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시니어 문화를 바로 세우는 일은 사회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에서 김 감독은 연출과 제작, 연기까지 동시에 맡았다. 그만큼 부담도 컸다. 그는 “각본을 써야 하는 정신적 부담, 배우로서의 구력, 감독으로서 작품의 부피와 질감을 챙기는 일은 연극과 뮤지컬에서도 해왔지만, 영화 제작사로서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은 훨씬 컸다”고 털어놓았다. 독립영화의 현실 속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이상을 함께 바라봐야 했던 점도 큰 고민이었다. 다만 그는 “제작진과 배우 모두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영화가 무산될 뻔했던 위기를 꼽았다. 그는 “제작비 문제뿐 아니라 총체적 난국 속에서 작업 정신이 약해지고 번아웃이 왔을 때는, 이 모든 일이 악몽이어서 깨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각본은 얽히고 배우 호흡은 맞지 않으며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결국 자신과의 싸움 끝에 버텨냈다고 했다. “포기를 모르는 것이 내 배우력의 기반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의 작업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독립영화 현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배우근성”이라고 답했다. 44년간 배우와 공연 연출을 하며 온갖 현장을 다 겪어온 경험, 그리고 파트 감독들과 출연 배우들이 보여준 ‘들풀 같은 기질’이 영화의 힘이 됐다고 말했다. 화려하게 다듬어진 스타 시스템이 아니라, 맨몸의 헌신과 생활의 감각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는 뜻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로렌조 박에 대해서는 애정과 냉정함이 함께 담긴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이번 장편영화에 데뷔하는 배우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로렌조 박을 비롯해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이모 역 배우들까지 자신이 훈련시켜 배우로 세운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아직 미흡한 점이 있지만 그들의 재능을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들 사이의 케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개인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날것의 맛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이자 배우로서 동시에 작업한 경험은 분명한 리스크를 안겼다. 그는 “배우를 겸하면 배우 본인은 손해를 많이 볼 수 있다”며 “무서운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배역도 쉽지 않은데 감독의 시선까지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는 “첫애는 뭣 모르고 낳는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라고 표현했다. 결국 자신을 믿는 것으로 한계에 도전한 작업이었고, 연기만 할 수 있는 환경이 그리울 때도 많았다고 했다.

 

시사회 현장에서 받은 관객 반응은 그에게 깊은 감동과 송구함으로 남았다. 그는 “예상 못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 공감해주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 혹시 부정적인 반응이 터지려는 것은 아닌가 긴장했는데, 이내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면서도 감읍했다고 회상했다. 그 장면은 감독에게 작품이 스크린 밖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았다는 확인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김 감독의 삶과 작품 세계 모두에 깊은 뿌리로 남아 있다. 그는 “어머니는 다재다능한 분이셨고 외모와 기질까지 제게 물려주셨다”며 “섬세하고 예리한 통찰력과 감성, 언변,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배우, 작가, 연출가로서 삶을 감당할 수 있었던 바탕에도 결국 어머니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이 영화를 “그분에 대한 딸로서의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 영화를 만들며 개인적으로 치유되거나 깨달은 점에 대해서는 “예술가로서의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할지 로드맵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의 바람은 단순하다. “아름다운 배우로 90세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그의 삶의 태도가 겹쳐 있다.

 

김 감독은 관객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당신은 어떤 노년으로 살 것인가”를 꼽았다. 치매를 친구로 삼아 아름다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화두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는 다가오는 삶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분히 자격 있는 당신들이니까”라는 한 문장은 영화의 가장 따뜻한 결론처럼 들린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시놉시스가 나와 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메모리 – Clock of Life’의 최종 손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다 완성도 높은 개봉작으로 관객 앞에 세우는 일이 먼저라는 뜻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 세계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영화 만들기”라고 답했다. 시대는 급변하지만 원본에 충실한 영화, 화려한 기술이나 첨단 장치보다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의 영화’를 지키고 싶다는 말은 그의 창작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는 관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했다.
“치매는, 수고하며 잘 이기고 인생을 살아온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날개 같은 가벼움을 주는 지우개로 지우고 날아가도록 신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는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치매를 둘러싼 공포를 넘어 끝내 존엄과 위로의 언어를 찾고자 한 한 창작자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메모리 – Clock of Life’는 바로 그 간절함 위에 세워진 영화다. 기억을 잃어가는 시간조차 인간답게 통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지탱할 수 있기를 바라는 믿음. 김한나 감독은 그 믿음을 영화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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