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남희)는 3월 19일부터 오는 6월 14일까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Zagreb)과 공동기획전 '불연속의 접점들(Circuits of Chanc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의 오랜 협력 속에서 성사된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백남준의 예술과 크로아티아 미디어아트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출발했음에도 어떻게 예기치 않은 접점과 공명을 형성해 왔는지를 조명한다.
'불연속의 접점들'은 국내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던 크로아티아 미디어아트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백남준을 국제적 미디어아트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전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형성된 예술 실천이 어떻게 교차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기술과 예술, 신체와 매체, 우연과 구조, 기억과 소거라는 주제를 폭넓게 탐색한다.

전시는 크로아티아 미디어아트의 역사적 흐름을 세 시기로 나누어 구성한다. 먼저 1960~70년대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전개된 국제적 미술운동 뉴 텐던시(New Tendencies)를 조명한다. 뉴 텐던시는 기술 발전을 예술의 내부로 수용하고, 예술가·이론가·기술자 간 협업을 바탕으로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예술의 방법론으로 도입한 선구적 흐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블라디미르 보나치치, 이반 피첼리, 알렉산다르 스르네츠, 콜로만 노바크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문제의식과 미학적 성과를 국내 관객에게 처음 본격 소개한다.
이어 1970~80년대의 실험적 비디오 실천을 통해 비디오와 퍼포먼스, 그리고 신체와 감각의 관계를 탐구한 작가들을 다룬다. 카탈린 라딕, 고란 트르불랴크, 이반 라디슬라브 갈레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달리보르 마르티니스, 산야 이베코비치 등은 비디오의 기술적 특성을 적극 활용해, 영상 매체가 새로운 사유와 비판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초기 퍼포먼스 영상 '리듬 2'(1974)가 국내에 처음 소개돼 주목된다.

전시의 후반부에서는 1990년대 이후 변화한 크로아티아 동시대 미디어아트를 조명한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전쟁과 사회 변화를 겪은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은 최신 기술을 수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긴장을 새로운 화면 경험으로 확장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작품을 완결된 결과물이 아닌, 시간과 데이터,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로 제시하며 관객과 작품의 관계 또한 끊임없이 갱신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고란 트르불랴크, 다르코 프리츠, 단 오키, 달리보르 마르티니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블라디미르 보나치치, 산드라 스테를레, 산야 이베코비치, 안드레야 쿨룬치치, 알렉산다르 스르네츠, 이반 라디슬라브 갈레타, 이반 마루시치 클리프, 이반 피첼리, 카탈린 라딕, 콜로만 노바크, 토모 사비치-게찬 등 총 16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조각·설치·비디오·사진 등 총 26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전시기획은 이상아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단 오키 독립 큐레이터, 마티나 무니브라나 자그레브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올가 마이첸 린 독립 큐레이터가 맡았다.

주요 출품작으로는 달리보르 마르티니스와 산야 이베코비치가 각각 1982년 뉴욕, 1993년 자그레브에서 백남준을 인터뷰한 영상 기록이 소개된다. 이는 백남준의 예술관과 시대 인식을 육성으로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고란 트르불랴크의 ‘무제(컷)’, 이반 라디슬라브 갈레타의 '거울 탁구'와 ‘TV 탁구’, 달리보르 마르티니스의 '돌 정원', 콜로만 노바크의 '빛의 오르간', 알렉산다르 스르네츠의 '오브제 130370', 산야 이베코비치의 '메이크업–메이크다운', 다르코 프리츠의 '404_파일을_찾을_수_없습니다', 안드레야 쿨룬치치의 '닫힌 현실–배아' 등은 기술과 지각, 신체와 사회, 미디어와 현실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전시는 시각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과 영상 프로그램으로도 확장된다. 개막식에서는 크로아티아 현대 음악의 거장 밀코 켈레멘과 작곡가 전현석의 작품을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특별 공연이 열린다. 밀코 켈레멘은 백남준과 교류했던 작곡가이자 국제 현대음악 축제인 자그레브 음악 비엔날레를 창설한 인물로, 이번 공연에서는 그의 '콘체르탄테 즉흥곡'(1955)과 '서프라이즈'(1967)가 무대에 오른다. 더불어 전현석의 '확산하는 점들'(2017)도 함께 연주되며, 이 곡은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8–1962)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다. 연주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맡으며,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개막 주말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 특별 상영회 및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와 비디오 작품을 3회에 걸쳐 선보이며,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초기 비디오와 최근 작업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상영 후에는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단 오키를 모더레이터로 산드라 스테를레, 고란 트르불랴크, 이반 마루시치 클리프 등 참여 작가들과의 대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백남준아트센터 박남희 관장은 "이번 전시는 백남준을 한국 내부의 상징적 작가로만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동유럽 미디어아트의 역사와 연결된 국제적 흐름 속에서 다시 사유하게 하는 자리"라며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크로아티아 미디어아트의 역사와 성취를 통해,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