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한국 현대조각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온 조각가 김윤신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3월 17일부터 오는 6월 28일까지 이어지며, 평생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 온 한 예술가의 70여 년 창작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김윤신의 생애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약 170여 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제작한 석판화와 드로잉, 1970년대 실험적인 평면 작업, 나무와 돌을 사용한 대표 조각 작품, 그리고 최근 몰두하고 있는 회화와 ‘회화-조각’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세계 전반을 폭넓게 조망한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동 속에서 성장했다. 전쟁 이후 폐허와도 같았던 예술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 과정을 온몸으로 경험해온 산 증인과도 같은 존재다.
195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한 그는 일찍부터 조각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8년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64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하며 유럽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을 직접 경험했다.
귀국 후 그는 조각과 판화, 회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모색했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무를 주요 재료로 삼아 수직 형태의 추상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한국 조각계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시도였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는 모더니즘 조형 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재료와 형식을 탐구하던 시기였다. 김윤신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무라는 전통적 재료를 통해 자연의 생명성과 추상적 형태를 결합한 독특한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업 철학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다. 이는 작가와 재료가 하나로 합쳐져 또 다른 하나의 존재, 즉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윤신에게 조각은 단순히 재료를 깎아 형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오랜 시간 나무를 바라보고 만지며 그 안에 잠재된 형태를 발견한다. 이후 톱과 망치, 끌을 사용해 나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형상을 밖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와 재료,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사라진다. 조각은 작가의 의지가 일방적으로 투영된 결과물이 아니라, 재료와의 대화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체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김윤신의 조형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1층 전시실은 1970년대 중후반 대표작인 〈기원쌓기〉 시리즈로 시작된다. 수직적으로 쌓아 올린 형태의 이 작품들은 원초적인 생명의 에너지와 상승의 이미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어 ‘합이합일’ 개념이 형성되던 시기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가 전시된다. 나무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곡선과 절제된 형태는 자연과 인간의 조형적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제작된 석판화와 드로잉, 1970년대의 캔버스 추상회화가 함께 전시된다. 자유로운 선과 색채로 이루어진 평면 작업들은 그의 조각과 깊은 조형적 연관성을 지닌다. 평면과 입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 전시는 장르를 넘나들며 지속되어 온 작가의 조형적 탐구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시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1983년 아르헨티나로의 이주 이후 펼쳐진 작업들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이미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던 그는 돌연 남미로 떠났다. 새로운 자연과 문화 속에서 예술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남미의 거대한 원목을 재료로 삼아 더욱 역동적인 조각 작업을 전개했다. 전기톱을 사용해 대담하게 나무를 깎아낸 작품들은 자연의 원초적 힘과 생명력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 시기의 작업은 현대적 추상 조형과 원시적 조형성이 결합된 독특한 미학을 보여준다. 한국적 감성과 남미 자연의 에너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김윤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가 완성된 것이다.

2층 전시실에서는 김윤신 조각의 또 다른 축인 돌 조각과 2000년대 이후 변화한 나무 조각 작품들이 소개된다.
특히 아르헨티나 원주민인 마푸체(Mapuche) 부족의 색채와 문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작품들은 그의 예술이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그는 회화에도 깊이 몰입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로 이루어진 회화 작품들은 조각과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의 에너지와 삶의 환희를 표현한다.
전시장 외부에는 최근작 〈노래하는 나무 2013-16V1〉(2025)이 설치된다. 이 작품은 2013년 제작된 나무조각을 알루미늄으로 캐스팅한 뒤 아크릴 채색을 더한 작업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회화-조각’이라 부르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김윤신의 예술은 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여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 순수 추상의 조형 원리는 남미의 자연과 문화와 결합하며 더욱 확장되었다.
또한 그의 작업에는 어린 시절 경험한 한국의 민속 신앙과 기독교적 신념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은 작품 속에서 원시적 조형성과 현대 추상의 언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나는 독특한 미학을 만들어낸다.
한편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는 “김윤신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길이 예술인 듯 숨쉬듯 작업해온 작가”라며 “톱질과 망치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의 조각은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서 점점 보기 어려운 ‘작가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는 평생을 예술과 하나 되어 살아온 한 예술가의 삶을 깊이 있게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기간 동안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3월 27일에는 김윤신 작가가 직접 자신의 삶과 작업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4월 24일과 5월 15일에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대중 강연이 진행된다.
또한 6월 13일에는 한국 조각사와 아시아 및 남미 모더니즘의 맥락 속에서 김윤신 작업의 의미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될 예정이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 김윤신의 삶은 예술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무와 돌 속에서 생명의 리듬을 길어 올려온 그의 조각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이번 회고전은 한 조각가의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와 만나며 확장되어 온 과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