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수)

  • 맑음속초 4.8℃
  • 흐림동두천 -2.1℃
  • 맑음춘천 -1.2℃
  • 맑음강릉 3.7℃
  • 맑음동해 2.9℃
  • 구름많음서울 1.2℃
  • 구름조금인천 0.6℃
  • 구름많음청주 1.1℃
  • 구름많음대전 0.3℃
  • 구름조금대구 3.1℃
  • 구름많음전주 0.6℃
  • 구름많음울산 2.4℃
  • 흐림광주 2.2℃
  • 흐림부산 4.4℃
  • 구름많음제주 3.8℃
  • 구름많음서귀포 5.7℃
  • 흐림양평 -1.0℃
  • 흐림이천 -0.1℃
  • 구름많음제천 -6.2℃
  • 구름많음천안 -2.2℃
  • 구름많음보령 -2.7℃
  • 구름많음부안 0.7℃
  • 흐림강진군 0.4℃
  • 구름많음경주시 2.9℃
  • 흐림거제 2.5℃
기상청 제공

컬럼

[박선아 칼럼] '브람스의 불안과 성숙, 그리고 헌정의 음악' 불안은 어떻게 형식이 되고, 사랑은 어떻게 구조가 되는가

문화저널코리아 박선아|요하네스 브람스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성숙한 낭만주의자’, ‘고전적 균형의 계승자’라는 수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그의 음악을 지나치게 안정된 양식 안에 가두는 위험을 내포한다. 브람스의 음악은 결코 태생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출발점은 극도로 불안정한 내면, 과도한 자기검열,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었다. 브람스의 위대함은 불안을 제거한 데 있지 않다. 그는 불안을 끝까지 견디며, 그것을 형식으로 변형시킨 드문 작곡가였다.

 

위대한 예술가는 늘 불안한 존재였다. 위대한 예술가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과 방향을 분명히 알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 속 위대한 음악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통념은 거의 예외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의 출발지점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실패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 자기 기준에 도달하지 못 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들은 타인의 평가보다 자기 내면의 기준을 더 무서워했다. 이 기준이 높을수록 불안은 커지고, 그 불안이 깊을수록 작품세계는 더 정교해졌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위대함과 불안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높은 인지능력, 높은 감수성, 높은 자기 반성능력을 가진 사람 일수록 자기 작업을 더 정확히 인식하고, 그만큼 더 많이 불안해진다. 이는 신경증적 불안이 아니라, 고차원적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불안이다.

브람스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 대해 비정상적일 만큼 엄격했다. 그는 작품을 끝없이 수정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악보는 스스로 불태웠다. 이 행위는 단순한 완벽주의가 아니라, 창작 자체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의 표현이었다. 로베르트 슈만이 그를 “미래의 음악”이라 칭찬했을 때, 그 찬사는 브람스에게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되었다. 기대는 곧 불안으로 변했고, 불안은 창작의 속도를 늦추었다.

 

이 불안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교향곡의 지연이다. 브람스는 첫 교향곡을 발표하기까지 20년 이상을 망설였다. 그는 “베토벤의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고 고백했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을 쓴다는 것은, 음악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당하는 문제였다. 브람스에게 교향곡은 장르가 아니라 시험대였다.

 

그러나 이 오랜 침묵은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성숙의 준비 기간이었다. 제1번 교향곡을 분석해 보면, 형식 감각의 치밀함, 동기 발전의 일관성, 전개부의 구조적 밀도는 거의 병적인 자기검열을 통과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브람스의 형식은 자연스럽게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불안이 강요한 구조였다.

이 점은 피아니스트가 브람스를 해석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브람스의 음악은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프레이즈는 종종 지연되고, 종지는 한 박자 늦게 닫히며, 클라이맥스는 충분한 준비 없이 오지 않는다. 이 지연된 정서 구조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의 성격 구조 자체가 음악 문법으로 굳어진 결과다.

 

브람스의 정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클라라 슈만과의 관계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다. 도덕적 책임, 슈만에 대한 존경, 자기검열, 그리고 자기부정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 관계는 그의 음악에 독특한 억제 구조를 만들어냈다. 브람스의 서정은 결코 노골적이지 않다. 감정은 항상 구조 속에 갇혀 있고, 과잉은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특히 피아노 작품에서 이러한 특징은 두드러진다. 인터메초, 발라드, 후기 소품들은 모두 외견상 단순하지만, 내부에는 극도로 높은 정서 밀도가 축적되어 있다. 연주자가 이 음악을 감정적으로 빠르게 풀어버릴 경우, 브람스 특유의 긴장 구조는 쉽게 붕괴된다.

 

이 음악은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연주자에게만 비로소 말문을 연다. 브람스에게 헌정은 단순한 사회적 관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를 기록하는 방식이었고, 말 대신 선택한 정서적 고백이었다. 요아힘에게 헌정된 바이올린 협주곡, 클라라에게 바쳐진 수많은 실내악, 그리고 후기 클라리넷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헌정들은 모두 특정 인간에게 향한 소리였다. 브람스의 음악은 결코 추상적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태어난 소리였다.

 

특히 후기 클라리넷 소나타와 삼중주에서 우리는 노년의 브람스가 도달한 정서적 수용을 확인하게 된다. 이 작품들에서는 젊은 시절의 자기검열이 상당 부분 완화되고, 대신 긴 호흡, 단순화된 화성, 그리고 여백이 많은 프레이징이 등장한다. 감정은 더 이상 억압되지 않고, 그러나 여전히 과장되지 않는다. 이것이 성숙이다. 성숙이란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더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는 일이다.

브람스의 화성 언어 역시 그의 불안 구조를 정교하게 반영한다. 표면적으로 그는 고전적 기능화성의 틀을 유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끊임없는 지연과 모호성을 사용한다. 종지 직전의 서스펜션, 해결을 미루는 감7화음, 병행조와 관계조의 미묘한 전환, 그리고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종결 설계는 모두 불안을 질서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피아니스트가 브람스를 연주할 때 화성을 단순한 음의 결합으로 다루면, 이 음악은 쉽게 무겁고 답답해진다. 그러나 화성을 긴장의 밀도, 해소의 속도, 구조적 호흡으로 읽기 시작하면, 브람스의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유기적으로 살아난다. 이 음악은 손보다 귀로, 귀보다 구조 감각으로 연주해야 한다.

 

음색과 텍스처 역시 브람스 해석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그는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적으로 사용하지만, 그 오케스트레이션은 화려하지 않다. 중후한 중음역, 밀도 높은 내성, 제한된 고음 사용은 감정을 통제된 공간 안에 가두는 음향 전략이다. 과도한 페달과 과장된 루바토는 이 음악을 쉽게 붕괴시킨다. 브람스의 음악은 내적 긴장을 유지하는 소리를 요구한다.

 

오늘날 우리는 불안을 병리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브람스는 보여준다. 불안은 제거되지 않는다. 불안은 변형될 수 있을 뿐이다. 불안은 자기검열이 되고, 자기검열은 구조가 되며, 구조는 성숙이 된다. 브람스의 전 생애는 이 변형의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젊은 연주자보다, 어느 정도 인생을 통과한 연주자에게 더 깊은 설득력을 가진다. 이 음악은 기술을 묻기 전에 태도를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불안을 다루어 본 적이 있는가. 감정을 억제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존중해 본 적이 있는가.

 

브람스는 불안을 미학으로 만들었고, 사랑을 헌정으로 남겼으며, 성숙을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지금도 연주자에게 가장 어려운 음악 중 하나다. 기술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불안은 인생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깊어지기 위한 통과 지점이다. 그리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헌정이다. 브람스는 그 두 가지를 음악으로 끝까지 증명한, 드문 작곡가였다.

 

브람스의 음악은 위로하지 않는다. 동정이 아니라 존중, 위안이 아니라 공존의 음악이다. 브람스의 후기 음악은 바로 그 축적된 시간을 위한 음악이다. 젊음을 찬미하지 않고, 성공을 자랑하지 않으며, 조용히 한 인간의 전체를 받아들이는 음악. 그래서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마치 노년의 언어를 가장 정확히 음악으로 번역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람스의 후기 작품들은 이 조건을 거의 이상적으로 충족한다. 그의 화성은 안정적이면서도 단조롭지 않고, 리듬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으며, 프레이징은 길고 호흡 중심적이다. 불안을 성숙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음악가, 노년의 언어를 음악으로 번역한 작곡가라고 생각된다.

배너

CJK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