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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뮤지컬

[인터뷰] 배우 박보결, "지금 떠나지 않으면 더는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30년 만에 경주시립극단을 떠나는 배우 박보결, 새로운 무대로의 결단

문화저널코리아=경주 오형석 박선아 기자 |경주시립극단의 '얼굴'로 불리며 30여 년간 지역 연극계를 이끌어온 배우 박보결(57). 그가 내년 초 서울행을 결정했다. 안정된 기반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출발한다는 선택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망설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일, 경주예술의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다시 숨을 쉬고 싶다"는 심중의 고백을 차분히 들려주었다. 인터뷰는 그의 30년을 지나, 그가 떠나는 이유와 앞으로의 길에 대해 깊숙이 들어갔다.

 

■"극단은 제 뿌리였지만,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30년 넘게 지켜온 극단을 떠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웠죠. 30년 동안 저는 경주시립극단에서 배우로 살아왔어요. 이곳은 제 뿌리이자 성장의 모든 과정이 담긴 곳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측 가능한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이 바뀌어도 제가 같아 보이고, 같은 구조 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가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죠."

 

■ 정체감이 계속 누적됐던 건가요?

 

□"네. 고여 있는 물이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대로 안주하면 배우로서 더는 살아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숨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결단해야 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외부 무대에서 만난 뜨거움이, 저를 다시 깨웠어요" 

결정의 계기가 된 순간이 있었습니까?

 

□"외부 무대를 서면서였어요. '동경이 마술피리' 같은 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 제작진들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한 장면을 위해 밤새 토론하고, 더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 그 에너지가 너무 강렬했어요. 그걸 보면서 깨달았죠. '나도 다시 이런 에너지를 만나고 싶다',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고."

 

■그 뜨거움이 결정을 앞당긴 건가요?

 

□"네. 오랫동안 제가 잊고 있던 감정이었어요.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고, 새로운 방식으로 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 박보결'의 다음 장을 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직접 기획서를 들고 뛰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더군요"

 외부 활동을 늘리면서 시야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인가요?

 

□"맞아요. 최근에는 직접 기획서를 들고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작품 확장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았구나' 하고요. 서울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어요."

 

■배우로서의 영역을 더 넓히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연극만이 아니라 영화·드라마 등 영상 연기도 해보고 싶고, 17년간 병행했던 메이크업·분장 분야도 더 확장할 수 있겠죠. 기획·프로듀싱에도 관심이 있고요. 배우로서도, 예술가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넓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나이는 벽이 아닙니다. 꿈을 놓는 순간 배우는 죽습니다"

서울에서의 새로운 출발에 부담은 없나요?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을 텐데요.

 

□"물론 부담은 있어요. 하지만 나이는 '물리적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꿈틀거리는 게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배우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저는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이 제2의 전성기를 만들 시기라고 느낍니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우는 꿈을 놓는 순간 죽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안주하는 순간 멈추는 게 아니라 후퇴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큰 무대로 가고 싶어요."

 

■"경주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제 길을 확장하는 겁니다"

경주를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아쉬움은 없나요?

 

□"있죠. 당연히. 하지만 떠난다는 표현보다는 '선택을 확장한다'는 말이 맞아요. 경주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주에서 받은 사랑과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 내려와 함께 무대에 설 것입니다."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처음엔 많이 걱정하셨어요. 30년 가까이 몸담은 곳을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더 늦기 전에, 배우로서 다시 숨을 쉬고 싶다'고요. 결국 응원해주셨습니다."

 

■"극단의 마지막 무대… 가장 감정이 복잡한 작품입니다"

경주시립극단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리어왕-다시 부르다’(20~22일, 화랑홀)입니다.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렇죠. 거너릴 역을 맡았는데,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30년 동안 동고동락한 동료들과의 마지막 무대니까요. 매 장면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감사함, 미안함,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설렘까지…."

 

■같이한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고락을 함께한 모든 동료들과 선후배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무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대에서 더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경주의 30년, 그 자체가 제 역사이자 자산입니다"

박보결의 이력은 지역 문화예술계가 걸어온 궤적과 궤를 같이한다.

 

경주시립극단 주요 작품 주·조연 100여 편, 한국연극협회 경주지부장, 한국예술행정협회 연극분과위원장, 신라예술제·예총예술제 예술감독, 각종 연극제·문화축제 연출·출연, 경북예술제 ‘경북예술공로상’ 등 다수 공로 표창….

 

동시에 그는 가수 ‘보결’로 앨범 1~4집을 발표하고 콘서트와 초청 공연을 병행해온, 다재다능한 복합 예술인이기도 하다. 그가 쌓아온 이 모든 경험은, 경주의 문화 예술 생태계를 견고하게 지탱해온 중요한 자산이다.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30년을 보냈습니다. 너무 감사한 시간이죠. 하지만 제가 배우로서 계속 살아 있으려면,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숨을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떠나는 겁니다."

 

경주의 30년을 응축한 배우 박보결의 새로운 출발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무대를 향해 깊고 단단하게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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