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코리아 김뿌리 기자 | 제46회 서울연극제(집행위원장 박정의)의 해외교류작품 <S고원에서>가 6월 6일(금)부터 6월 8일(일)까지 3일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된다.
<S고원에서>는 1991년에 초연된 히라타 오리자의 초기 대표작이자 30년 넘게 재공연을 이어오며 사랑받아온 극단 세이넨단의 문제작이다.
<S고원에서>는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에 담겨있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성과 일본 소설가 호리 타츠오의 중편소설 『바람이 분다』에 깃든 고요한 공간성을 함께 구현하고자 한 착상에서 출발했다.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고원 지대의 요양소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요양하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면회를 온 사람들이 나누는 담담한 대화 속에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을 섬세한 촉수로 그려낸다.
1991년 초연 이후, 현대 사회가 직면한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하기 위해 2004년에 한 차례 대폭 수정을 거친 이 연극은 2003년에는 프랑스 연출가 로랑 구트만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에서 프랑스 버전을 연출하여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히라타 오리자 본인 연출로도 2006년 파리(프랑스), 에이글(스위스), 로마(이탈리아)에서, 2008년에는 카디프와 리즈(영국), 브뤼셀(벨기에), 트리어(독일), 브장송(프랑스) 등에서 공연되며 <도쿄 노트>, <서울시민 1919>, ‘과학하는 마음’ 연작 등에 함께 세계적인 연극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2004년에 극단 청우가 <S고원으로부터>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무대화한 바 있다.
히라타 오리자와 세이넨단의 많은 연극들이 그렇듯, <S고원에서>에서도 100분 남짓의 공연 시간 동안 장면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 동안 열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들락거리는데, 그러는 동안 벌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가는 것이 이 연극의 내용이다.
마치 현실 세계의 한 조각을 딱 떼어내 무대에 올려놓은 것 같은 이 연극이 다루는 테마는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실존적 문제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직 젊은이들이지만 삶 속에서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양소의 환자들과 그들을 찾아온 면회객, 그리고 의료진 사이에는 ‘죽음’과 ‘시간’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감각하는 듯하다.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영원한 헤어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수다를 떨고 어린 아이처럼 장난을 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차가운 벽이, 아득한 거리감이 감지된다.
<S고원에서>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히라타 오리자는 이 작품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음이 끝난 곳으로부터...
히라타 오리자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과 호리 다츠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의 정밀한 공간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문학에서는 불가능한 어떤 작업을 연극을 통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말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죽음을 상상하고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동물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이미지가 단지 단순한 암흑만이 아닌 것은 왜일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왜 그럴까? 어떤 한계나 억압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은 초월적인 가치, 즉 아름다음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한계나 억압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호해지고, 아름다움의 가치관이 발안정해진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끝난 곳으로부터 한편의 작품을 빚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담담한 연극 작품을 선보이며 1990년대 일본 연극계에 혁신을 일으킨 히라타 오리자. ‘조용한 연극’이라 불리는 그의 연극은 배우가 관객에게 등을 진 채 말하거나 동시에 여러 대화가 오가는 등 기존 사실주의 연극의 관습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발상을 담고 있다.
<S고원에서>는 그런 히라타 오리자 연극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연극과는 달리 극적이라 부를 만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셈이지만, 장면전환 없이 10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관객의 머리 속에는 예사롭지 않은 사유와 이미지가 부감되듯 떠오른다.
제46회 서울연극제는 해외 연극과의 교류를 본격 시작하는 첫해로 일본 세이넨단의 <S고원에서>를 교류작품으로 선택했다. 향후, 히라타 오리자가 페스티벌디렉터를 맡고 있는 일본의 토요오카 연극제와 본격 교류하며 격년제로 한일 간 우수 공연을 상호 교류하기로 했다.
<S고원에서>는 플레이티켓에서 예매가 가능하며 문의는 서울연극협회(02-765-7500)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