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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상징과 다큐멘터리가 혼재된 연극'달의 목소리'

임시정부 100년 극단 독립극장 40년 기념공연

 


[문화저널코리아] 김영일기자 =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인 이들이 대내외적으로 나라를 위해 행동할 때, 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 살림을 묵묵히 챙겼던 정정화.

 

19796월 창단을 시작으로 잊혀져 가는 역사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달려왔던 극단 독립극장은 일제와 맞서 싸운 한국의 잔다르크 정정화 여사를 기리는 작품 <달의 목소리>를 오는 54일부터 26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선보인다.

 

작품은 배우가 왜 정정화선생의 이야기로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정정화라는 인물이 걸었던 시대를 시간을 쫓아가면서 독립이라는 역사적 명분아래 인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치와 의미 그에 따르는 두려움과 감동, 시대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

 

 정동 세실극장에서 선보인다.

 

정정화 여사가 처음 상해로 건너갔을 때부터 독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본국을 드나들었던 기록과 세계정세에 흔들렸던 독립의 위기와 독립이후 국내 사정, 그리고... 전쟁...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았던 한 여인이 차디찬 철창 안에서 자신의 삶을 무너트릴 수 밖에 없었던 신념을 빼앗 겼던 기록까지.. 배우는 그녀를 세웠던 힘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는 동시에 우리가 지금 무엇으로 나를 세우고 있는지 묻는데...

 

정의, 책임이라는 말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다니고 있다. 책임을 다했을 뿐 잘못은 없다는 사람, 자신의 과오를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정의는 실종되고 책임에 관한 무책임한 말이 궤변처럼 나무하는 시대이다.

 

중원 땅,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정의롭게 헌신하셨던 분들이 날짜정해 놓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셨 듯이 독립에 관한공연은 특정한 달에만 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365일 언제나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일독립투쟁을 축소하고 친일은 숨기며 왜곡된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현실 앞에서 장정화 여사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한 연극 <달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건전한 역사의식과 진정 정의가 무엇인지 자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달의 목소리>정정화여사의 회고록을 읽어나가면서 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는 역사속의 정정화로 분하며, 피아노, 첼로와 해금 선율 속에서 영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재현을 통한 이야기 전달방식을 버리고 일인 배우의 출연 만으로 담담히 관객과 대화를 펼쳐나간다.

 

무대는 사실적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기호들로서 표현되며, 영상의 활용은 역사를 극적인 판타지로서 포장하는 것이 아닌 역사 그 자체의 사실적 잔혹함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하여 역사는 가상이 아닌 진실 된 사실임을 증명한다.


상징의 기호를 통하여 관객은 저마다 스스로 의미를 생산하여 획득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연극이 되도록 하며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유도 할 것이다.

 

암울한 시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이름 한 자락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독립 운동가들과 그 뜨거운 시대의 중심에 있던 정정화의 삶을 소재로 시대와 얽힌 우리 이야기를,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을 바라본다.

 

조국광복의 희망을 가족과 함께 품고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꽃피우려 했던 정정화 여사의 일생에는 우리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정화 여사를 오늘 무대로 호명함에는 그의 기록에서 읽혀지는 여백 때문이며 그 여백에 숨겨진 가슴 울렁거리게 하는 힘 때문일지 모른다.

 

정정화의 가슴에서 빛났던 희망의 불씨가 그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역사와 손잡고 미래로 향해 갈 것이다.

 

1998<! 정정화>, 2001<치마>, 2005<장강일기>로 정정화의 생을 끊임없이 작업해온 지 18. 2016, 영상예술과 결합된 실험적 멀티미디어 시공간극으로 만들어질 다큐형식의 <달의목소리>는 그녀의 영웅담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닌 그녀를 통해 바로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시간이다. 역사는 소리 없이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으며 국민의 망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성부에서 태어나 1910년 어린 나이에 김의한과 결혼했다. 남편은 구한말 고위 관료인 김가진의 맏아들이었다.

 

김가진은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했고, 정정화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1920년 역시 상하이로 망명했다.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한다'는 일념때문이었다.

 

그녀는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맡아서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10여년간 자금 모금책,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중국 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이동녕, 백범 김구 등 임정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조직하여 간부를 맡았고 충칭의 3·1 유치원 교사로도 근무했다. 1943년 대한애국부인회 훈련부장이 되는 등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광복 후 인생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미군정의 홀대 속에 1946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고, 오랫동안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구가 곧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중 김의한은 안재홍, 조소앙 등이 납북 되었으며, 남한에 남은 정정화는 부역죄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저서로는 회고록 녹두꽃(1987, 개정판 장강일기)을 남겼다.

 

이 회고록을 토대로 연극 장강일기치마, ! 정정화등 정정화의 일생을 소재로 한 연극이 공연되었다.(극단 독립극단) 198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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