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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서

박민형 장편소설 "그 사람이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삶은 가난했지만 영혼은 풍요롭고 뜨거운 사람들…그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소설

 

문화저널코리아 김영일 기자 |“부부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어 부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부부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3년 만에 신간 ≪그 사람이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를 펴낸 박민형 작가가 전하는 말이다. 이번 작품에도 박민형 작가는 가족극장을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섬세함에 의한 소설의 미학이 돋보인다. 마치 어떤 예민한 곤충의 더듬이가 문장과 행간을 섬세하게 더듬는 것 같다. 작가의 감각적 촉수가 줄곧 느껴지는 이 소설은 작품의 전면에 세 사람(정 계장, 양희 언니, 그리고 어머니)이 스크린을 꽉 채우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정 계장에 대한 ‘주인공 영남’의 감정은 “서서히 스며드는 물처럼 그 사람이 내 가슴을 적시고”, 또 문장을 적시고, 작품의 이면을 적시고 있다. 그리고 “두근거림과 떨림, 설렘, 환희. 세포마디의 날갯짓, 부르르 진저리를 치게 하는 간지러움.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 오직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밝히고 있는 환한 등불.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된 육체의 변화” 등 비록 작품 속이지만, 첫사랑은 이토록 아름답고 절절하다.

 

그러나 소설은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이면으로 한 채 양희 언니와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주인공의 아픔, 그리고 그로 인한 첫사랑 정 계장과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어두운 시대와 사회적 아픔을 배경으로 한 그 사람들의 삶을 노래한 소설 ≪그 사람이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를 이제 만나기로 하자.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영남은 ‘악극’을 써 보라는 친구의 제안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퇴직금을 주식으로 잃고, 결혼한 딸아이가 셋집을 전전하는 게 안타까워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주는 바람에 생활이 빠듯하다. 영남은 수락한다.

 

영남이 쓴 악극은 관객몰이에 성공하게 되고... 악극을 써서 목돈을 손에 넣은 영남은 드라마를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소설가로 남기로 한다. 소설 쓰는 데 전념하던 어느 날, 악극을 제작한 제작사로부터 악극이 공연될 K시에서 무대 인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영남은 K시라는 제작사 측의 말에 놀란다. K시가 자신의 첫사랑의 그 사람이 살았던 도시라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던 영남은, 어머니와 K시에서 살게 된 지난날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바람으로 이혼을 한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차린 양품점이 100만 원 짜리 계가 깨지면서 도산한다. 중학생이던 영남은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와의 갈등을 일기장에 쓴 것이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고... 담임선생님이 새어머니에게 조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영남은 어머니가 살고 있는 K시로 오게 된다.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가 안쓰러운 영남은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이곳저곳에 내지만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영남은 골목 끝에 서 있는 벚나무를 찾아 나섰다가 그 사람을 만나게 되고... H전자에서 여자 공원들을 뽑는다는 정보를 어머니에게서 듣는다. 영남은 이력서를 제출한다. H전자에서 면접을 보던 영남은 면접관이 벚나무 앞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라는 것에 경악한다.

 

H전자에 취업이 된 영남은 그 사람과 자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에게 일고 있는 남다른 감정이 첫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한 조로 일하고 있는 양희 언니가 보일러실에서 근무하는 황기사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에 영남은 그 사람과의 감정을 양희 언니와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 나가는데... 양희 언니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세상을 뜬다.

 

사회에서 만난 양희 언니를 친언니처럼 의지하고 따랐던 영남은 충격에 휩싸인다. 그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든 어머니마저 눈을 뜨지 않는다.

 

양희 언니와 어머니를 연이어 떠나보낸 영남은 K시에서 홀로 살아가게 되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이유를 잃은 영남에게 그 사람은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영남을 설득한다. 영남은 듣지 않는다.

 

점점 쇠약해지는 영남을 다리가 불편한 그 사람의 누나가 보살피게 되는데... 영남은 말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그 사람의 누나를 보면서 K시를 떠나기로 한다. 세월이 흐르고... 그 사람 곁을 떠난 영남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여느 부부처럼 퇴직한 남편의 세끼 밥을 차려주는 것을 힘들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무대 인사를 하는 곳이 K시라고 하자, 영남은 그 사람이 살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무대 인사를 하는 당일 날 아침 집을 일찍 나선 영남은 그 사람의 살았고, 자신이 잠시 살았던 그 동네를 찾아가게 되고... 그 사람의 누나를 만나게 된다. 영남은 그 사람의 집을 나서면서 자신이 그 사람 곁을 떠났던 이유를 비로소 고백하기에 이른다.

 

[ 책 속으로 ] “그 K시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소환하게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K시의 그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면 몇 백 년이나 되었을 법한 벚나무에 만발한 벚꽃이, 어두운 골목길을 등불처럼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40쪽)

 

“어머니가 아닌 한 인간 ‘조향례’의 이야기가 땅속으로 묻힌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 ‘조향례’의 생에 드리워진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결에 묻힌 채 어머니의 정신을 갉았을 꿈이 허공으로 완전히 흩어져 버린 것이었다.”(216~217쪽)

 

“그러다가 우리는 머리에 내려앉은 벚꽃 잎을 서로 떼어주었다. 잠들어 있는 아기 볼에 떨어진 벚꽃 잎을 떼어내듯 아주 조심스럽게. 혹여라도 아기가 깰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손을 떨면서.”(234쪽)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내던진 것이 병이 된 것이라고.

그렇다.

나는 나와 한방에서 잠을 자던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 새벽 머리가 아파서 깼을 때 “끄윽, 끄윽”거리는 어머니를 깨우지 않고 벽시계가 4번을 치는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는 것이, 양희 언니와 약속한 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그 새벽에 양희 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 두 사람을 죽음 속으로 내몰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몸부림만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로 해서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죄책감에 먹는 것을 거부한 채, 내 귀에서 들려오는 통곡소리에 나를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침묵을 지킨 채. 그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내 안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고 있었다.”(246쪽)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누나는 내가 살아낸, 모든 날들의 시간 속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앞으로도 살아낸 지난날들처럼 또 그렇게 잘 살아갈 것을 믿는다는 듯이.”(255쪽)

 

[ 작가의 말 ]

그 사람이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어쩌면 이 소설도 까치들에게 들었던 미안함처럼, 그런 ‘미안함’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은 자로서 동 시대를 살다가 함께 건너오지 못하고, 생을 마친 한 청년에게 이제야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살아오는 내내 혀끝을 칼에 베인 것 같은 아픔을 물고 있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모진 인연 하나를 끊어버린 것 같은 지금,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그곳으로 가서 걷고 싶습니다. 까치들이 저 때문에 놀라지 않도록 조심의 조심을 하면서요.

 

[ 출판사 서평 ]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영남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악극’을 써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노후에 들어가는 생활비 걱정을 하던 영남은 수락한다.

 

악극은 전국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악극을 제작한 제작사에서 영남에게 무대 인사를 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영남은 무대 인사를 하는 도시가 바로 자신의 첫사랑이 살았던 도시라는 사실에,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면서 영남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박민형 작가는 사회적 구조에 의한 죽음과 가정의 폭력에 의한 죽음을 보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삶의 질곡을 헤쳐나갈 수 있는 건 혼자가 아닌,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어한다.

 

현대 사회는 황혼 이혼과 졸혼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부가 함께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부부가 서로 곁에 있을 때 서로 사랑하며 존중해야 한다. 또한 충동에 의해 일회성 사랑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사랑이란 서로 주고받는 눈빛, 작은 손짓만으로도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모두가 겪었고, 겪었으며, 겪어야 할 첫사랑에 얽힌 사랑 이야기와 부부의 노후 문제로 인한 이야기를 박민형 작가는 한 편의 가족극장을 보는 것처럼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다.

 

[ 차례 ]

1. 노후 준비

2. 무대 인사

3. 낡은 기와집

4. 미루나무 아래

5. 남이섬

6. 화이트 크리스마스

7. 남아 있는 자들

 

[ 지은이 박민형 ]

1996년 ≪월간문학≫에 단편 <서 있는 사람들>로 소설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과 함성≫이 2000년 문예진흥원 창작지원 수상작에 선정되었으며, ≪4번 출구는 없다≫(2011), ≪달의 계곡≫(2018), ≪별똥별≫(2019, 단편소설집), ≪달콤한 이별≫(2020), ≪어머니≫(2022) 등을 펴냈다.

 

이외에도 2003년 KBS 악극 <빈대떡 신사>, 2007년 CPBC 창사 특집 드라마 <강완숙>, 2010년 <동정 부부 요한 루갈다> 극본, 2013년 뮤지컬 <롤리폴리> 각색, 2019년 CPBC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다큐 3부작 드라마 극본, 2019년 연극 <깻잎 전쟁>과 2022년 연극 <마담 트롯>의 희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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