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40)에게 음악은 남들과 조금 다르게 시작됐다. 네 살 때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쪽 귀로 세상의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는 이를 장애가 아닌 음악을 다르게 듣게 한 ‘숨겨진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한수진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쪽 귀로만 들어야 했기 때문에 음악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들었다”며 “그것을 숨겨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세에 일찌감치 데뷔한 그는 이날이 취재진을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들려주는 첫 간담회라고 했다.
한수진은 15세였던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해온 그가 이번에는 영국의 명문 실내악단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와 비발디의 ‘사계’를 새롭게 녹음했다.
1948년 창단된 ECO는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이던 1977년부터 후원해온 악단이다. 핀커스 주커만, 나이젤 케네디 등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과도 ‘사계’를 녹음했다.
그만큼 한수진에게 이번 음반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미 수많은 명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인 명반이 워낙 많아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연주자마다 기억과 경험, 성향이라는 프리즘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과 소리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의 핵심은 비발디의 ‘사계’만이 아니다.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과 20세기 아르헨티나 탱고를 대표하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한 음반에 담았다.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두 ‘사계’를 연결해 ‘팔계’로 부르는 구성이다.
한수진은 두 작품의 차이를 자연과 도시의 풍경으로 설명했다. “비발디가 자연과 계절을 상세하게 묘사한다면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의 공기 속에 바다의 기운이 스며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비발디의 전원적 풍경과 피아졸라의 도회적 감각이 하나의 음반 안에서 교차한다.
녹음 역시 특별했다. 비틀스가 녹음했던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단 4일 동안 진행됐고, 지휘자 없이 ECO와 협연했다. 한수진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악단과 함께 음악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음반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수진은 ECO와 함께 직접 관객을 만난다. 10월 24일 통영국제음악당을 시작으로 25일 아트센터인천, 28일 대구콘서트홀,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비롯한 무대를 선보인다.
한쪽 귀의 침묵을 안고 음악을 시작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그에게 ‘사계’는 이미 수없이 연주된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라는 또 하나의 프리즘을 통과해 다시 태어난다. 한수진이 말한 ‘숨겨진 축복’은 결국 다르게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독창적인 음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