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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손과 먹, 여백으로 붙잡은 '찰나'…강영희 회화가 더 자유로워졌다

붓을 버리고 손으로 그린 9년…강영희, '찰나'를 회화로 붙잡다'
구구갤러리서 10월 1~18일 초대전…2018년부터 9년 연속 개인전
먹의 번짐과 여백, 즉흥적 제스처로 삶의 순간을 기록…내년 6월 뉴욕 개인전 앞둬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회화에서 가장 붙잡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완성된 형상보다 오히려 그것이 만들어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강영희의 회화는 바로 그 ‘찰나’를 화면에 남기는 데서 출발한다. 붓을 내려놓고 손에 먹을 묻혀 화면을 긋고 문지르는 행위, 번지고 스미는 먹을 완전히 통제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 사이에 남겨둔 여백이 하나의 회화적 사건을 만든다.

 

강영희 작가 초대전 〈한갓 찰나적인 것으로〉가 1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서울 양천구 구구갤러리에서 열린다. 오프닝 세레모니는 3일 오후 4시다.

 

이번 전시는 강영희가 구구갤러리에서 여는 아홉 번째 연속 개인전이다. 2018년부터 매년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해 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인전을 넘어 작가의 조형언어가 변화해 온 과정을 한자리에서 가늠할 수 있는 전시다. 한 공간에서 축적된 9년의 시간은 강영희 회화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며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내년 6월 예정된 뉴욕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작가가 오랜 시간 다듬어 온 회화가 현재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강영희 회화의 핵심에는 ‘몸’이 있다. 작가는 붓 대신 손에 먹을 묻혀 화면을 직접 긋고 문지른다. 손의 압력과 속도, 멈춤이 그대로 화면에 남고, 먹의 농담과 번짐은 미리 계획된 형상이 아니라 행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이 된다.

 

그래서 그의 선은 사물의 윤곽을 재현하는 선과 다르다. 움직임 그 자체가 남긴 자국에 가깝다. 먹이 스미고 풀리는 과정까지 완전히 통제하지 않으면서 화면 안에 우연이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 작가의 의지와 우연, 의식과 무의식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강영희 특유의 회화적 긴장이 발생한다.

이번 신작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여백이다. 흰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먹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여백은 오히려 검은 획의 밀도와 긴장을 강조한다. 그리지 않은 공간이 그려진 공간의 리듬을 결정하는 셈이다.

 

색채 역시 변화의 폭을 넓힌다. 검정과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 사이로 파랑과 빨강, 노랑, 청록이 등장한다. 색은 특정한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화면 전체의 감정적 온도를 바꾸는 사건으로 작동한다.

 

먹의 번짐과 여백에서는 동양회화의 전통적 감각이 읽히지만, 강한 제스처와 화면의 물성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현대회화의 언어도 감지된다. 그러나 강영희의 작업은 어느 한쪽의 문법에 머물지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한 기술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몸에 익힌 뒤, 오히려 그 기술을 내려놓고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찰나’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나의 그림 속에서 보여지는 우연성과 즉흥적인 표현은 추상적인 형상들과 함께 매순간을 살아내는 찰나의 모습들이다.”

 

그에게 찰나는 단순히 순간적인 장면이 아니다. 지속되지 않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의지와 기쁨, 슬픔,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한 욕망을 끌어올리는 출발점이다. 작가는 그것을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모하여 표현했다”고 말한다.

 

이어 “나의 작업이 나의 삶을 확장시키고 치유와 회복을 주었듯이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새로운 감응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구구갤러리와 강영희의 인연도 이번 전시를 읽는 중요한 단서다. 구자민 구구갤러리 대표는 “구구갤러리의 경험과 성장은 강영희 작가와 궤를 함께해 왔다”며 “정제의 세련미를 넘어 자유로움에 이르려는 미학적 가치를 향해 함께 매진해 왔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 〈한갓 찰나적인 것으로〉 역시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떠올린 단상에서 가져왔다. 구 대표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예술적 자유”라며 “강영희 작가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지 직접 보시고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영희는 성신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지금까지 24회의 초대전 및 개인전을 열었다. 2025년 도쿄 국립신미술관 〈Dynamic Contemporary Artist〉와 뉴욕 Lume Studio 〈Unseen〉, 2024년 벨기에 〈코리아 뉴 웨이브7〉 등 국내외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18일까지 구구갤러리에서 계속된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이어진 강영희의 회화가 이번에는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다.

 

전시명은 〈한갓 찰나적인 것으로〉. 장소는 서울 양천구 목동중앙서로9길 30 구구갤러리. 문의 02-2643-9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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