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이수미 작가가 금속을 매개로 생명과 기억, 시간의 흔적을 조각하며 주얼리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펼치고 있다. 단단한 금속이라는 물성을 바탕으로 연약한 생명과 개인의 기억, 상처와 회복의 감정을 담아내며 서로 대비되는 개념들을 하나의 형태 안에서 충돌시키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이수미는 뉴욕주립대학교 F.I.T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장신구의 섬세한 조형성과 조각의 공간적 확장성을 동시에 경험한 작가는 두 장르를 단순히 결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물성과 감각이 만나는 경계에서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 중심에 'Ant'와 'LACE' 시리즈가 있다.
'Ant' 시리즈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인 개미와 견고한 금속의 대비를 통해 강함과 연약함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보여준다. 금속은 일반적으로 강인함과 견고함을 상징하지만, 이수미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작은 생명의 존재와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개가 된다.
작가는 거대한 힘보다 작지만 지속되는 생명력에 주목한다. 금속으로 구현된 개미는 하나의 작은 형상을 넘어 생명의 지속성과 기억의 흔적을 상징하는 존재로 확장된다.
'LACE' 시리즈에서는 또 다른 역설이 나타난다. 섬세하고 가벼우며 연약한 레이스의 구조를 단단한 금속으로 옮겨놓으면서 부드러움과 강인함, 취약함과 견고함의 관계를 뒤집는다.
손쉽게 끊어질 것 같은 레이스의 섬세한 패턴이 금속으로 구현되는 순간, 연약함은 오히려 강한 존재감을 획득한다. 이수미는 이러한 물성의 전환을 통해 상처와 회복이라는 인간의 경험을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그에게 상처는 감춰야 할 결함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생겨난 흔적이며, 존재가 살아왔다는 증거다. 따라서 작품에 남겨진 균열과 변형, 불균질한 표면은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기록하는 조형적 언어가 된다.
■ 금속, 차가운 물질에서 '기억의 표면'으로
이수미 작업에서 금속은 단순한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단단하고 차가운 물성을 가진 금속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생명과 기억을 담는 표면으로 변화한다. 특히 다른 재료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금속은 기존의 기능과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독립적인 조형 언어가 된다.
이번 작업에서 선보인 금속이 덧입혀진 백자, 기형적으로 흘러내린 도자, 거울과 반사 이미지를 활용한 오브제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찌그러진 곡면과 일부가 유실된 형태, 비대칭적으로 덧씌워진 금속 표면은 완벽하게 닫힌 형태를 거부한다. 오히려 그 틈과 균열을 통해 작품에 시간성과 서사를 부여한다.
작가는 완성된 형태보다 형태가 변화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손상되고,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된다.
■ 'Half',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만남
이수미의 작업 세계를 확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Half' 시리즈다.
미술평론가 심은록은 '금고와 창고, 그리고 그 사이 – 이수미의 미학적 전환'에서 이수미의 'Half' 시리즈를 현실의 세계인 오브제와 거울에 비친 허상의 세계가 반씩 결합해 비로소 온전한 형체를 이루는 작업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거울은 단순히 대상을 반사하는 도구가 아니다. 실재하는 오브제와 반사된 이미지는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형태를 구성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와 허상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심은록은 이러한 작업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동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수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주제와 맞닿아 있다.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보다 그 사물에 축적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이 작품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 경계에 머무르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다
이수미의 조형 세계는 어느 한 장르로 규정되지 않는다.
주얼리와 조각, 장식과 구조, 기능과 비기능, 실재와 허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특히 주얼리가 개인의 몸과 정체성에 가까운 장르라면 조각은 공간과 사회적 기억을 담는 장르다.
작가는 이 두 영역의 차이를 자신의 작품 안에서 충돌시킨다.
그 결과 개인의 내밀한 정체성과 집단적 기억, 사적인 오브제와 기념적 조형성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공존한다.
이수미에게 경계는 구분선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장소다.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는 순간, 서로 다른 감각이 중첩되는 순간, 익숙한 사물이 낯선 존재로 변하는 순간에 새로운 조형이 탄생한다.
■ 'UNSEEN',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
이러한 작업 세계는 지난 1일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9층에서 열린 'LOTTE NIGHT 2026' 특별전 《UNSEEN : ONE STEP BEYOND》에서도 이어졌다.
이수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금속과 도자, 거울과 오브제를 활용해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기억과 감각의 세계를 제시했다.
특히 'UNSEEN'이라는 주제는 그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형상을 움직이고,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힘은 때로 보이지 않는 기억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수미는 그것을 금속의 표면과 형태의 균열, 거울의 반사와 물성의 충돌을 통해 보여준다.
금속에 새겨진 생명, 표면에 남겨진 기억, 형태에 축적된 시간.
그의 작품은 단단한 물질 속에서 연약한 존재를 발견하게 하고, 상처의 흔적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읽게 한다.
결국 이수미가 탐구하는 것은 금속이나 도자라는 재료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살아낸 존재가 남기는 흔적과, 그 흔적을 통해 다시 발견되는 삶의 의미다.
주얼리에서 조각으로, 강함에서 연약함으로, 상처에서 회복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수미는 서로 대립하는 세계 사이에 머물며 그 경계에서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조형적 경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세계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