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기록의 봉합, 지워진 목소리를 다시 부르다"... 스페이스K 서울, 맨디 엘-사예 개인전 '테레사, 이후' 개최

  • 등록 2026.03.16 05: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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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의 스페이스K 서울이 3월 19일부터 오는 6월 21일까지 말레이시아 출신 작가 맨디 엘-사예의 개인전 '테레사, 이후(For Theresa)'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신작 9점을 포함해 회화와 설치 등 약 30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파편화된 기록과 이미지 속에서 역사 속에 가려졌던 여성과 이민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전시 제목 '테레사'는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차학경의 영어 이름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차학경의 실험적 저서 딕테에서 영감을 받아, 언어 대신 이미지와 기록의 '봉합'이라는 방식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맨디 엘-사예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어머니와 팔레스타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뒤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문화적 정체성과 이민자의 경험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그의 작업은 지도, 신문, 화폐, 책 표지 등 다양한 시각 자료를 수집해 콜라주와 실크스크린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박물관과 헌책방, 벼룩시장 등을 직접 방문해 고지도와 인쇄물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인 기록의 파편들은 작품 속에서 서로 겹치며 하나의 복합적인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역사와 지식의 체계가 어떤 기준으로 기록되고 배제되어 왔는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의 중심에는 작가의 대표 작업인 '넷-그리드(Net-Grid)' 시리즈가 자리한다. 이 작품에서 '넷(Net)'은 흩어진 이미지들을 포착하는 그물망을 의미하고, ‘그리드(Grid)’는 모더니즘 회화의 질서를 상징하는 격자 구조를 가리킨다.

 

신문 이미지와 텍스트 위에 그려진 격자는 정보를 정리하는 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화면을 가리는 '베일'처럼 작동한다. 질서와 체계의 상징인 그리드가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불안정한 감각과 기억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전시장 바닥에는 신문 위를 라텍스로 코팅한 설치 작업이 펼쳐진다. 고무 농장에서 일했던 어머니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피부’처럼 만든다. 라텍스가 마르면서 수축하고 변색되는 과정은 상처 입은 몸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며, 하루 만에 사라지는 뉴스와 기억의 덧없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신작 연작 'Grand Collection of World Art'에서는 서구 미술사의 대표 이미지도 등장한다. 작가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 '세계의 명화' 표지 속 프랑스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실크스크린으로 옮겨 화면에 재구성했다. 그러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인물의 시선을 확대해, 그동안 관찰의 대상이었던 여성을 응시의 주체로 전환한다. 서구 회화 이미지와 한글의 파편이 하나의 화면에서 충돌하며, 미술사 속 권력 구조와 문화 이동의 경로를 동시에 드러낸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배우 소유진이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기부로 참여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작품 옆 QR코드를 통해 음성 해설과 이미지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오형석 미술전문 기자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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