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서울 청담동 갤러리위(대표 박경임)가 권지안 개인전 'HUMMING ROA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풍경이라는 익숙한 장르를 통해 보이는 자연 너머, 보이지 않는 감각과 내면의 시간을 탐색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권지안의 회화에서 풍경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꽃, 흔들리는 숲의 형상은 특정 장소의 기록이라기보다 감정의 잔향에 가깝다. 그의 작품 속 자연은 객관적 대상이 아닌, 감각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심리적 공간이다. 이는 전통적 풍경화의 재현 중심 관점에서 벗어나, 내면의 진동을 시각적 언어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전시 제목 'HUMMING ROAD'에서 '허밍(humming)'은 의미로 규정되기 이전의 소리, 언어로 정제되기 전 감정이 머무는 가장 원초적인 울림을 뜻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 감정이 말이 되기 직전의 미세한 진동. 작가는 그 울림을 화면 위에 물질로 붙들어 둔다. 두텁게 쌓인 물감의 질감과 색채의 층위는 시간의 축적이자 정서의 밀도를 드러낸다.
특히 권지안은 붓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두화(指頭畫) 기법으로 작업한다. 손끝으로 색을 얹고 밀어내며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은 신체를 회화의 중심으로 호출하는 행위다. 손의 압력과 움직임은 감각의 흐름과 직결되고, 화면 위에 남은 물감의 흔적은 그 통과의 기록이 된다.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이 지나간 자리이자, 시간이 스며든 표면이 된다.

권지안의 작품은 재현과 추상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을 유지한다. 풍경의 형상은 존재하지만 특정 장소를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분위기와 상태를 환기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이해’하기보다 ‘느끼게’ 한다. 윤곽은 완결되지 않고, 색채는 서로 스며들며 진동한다. 그의 회화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감각의 발생을 공유한다.
'HUMMING ROAD'에서 ‘길’은 목적지를 향한 직선적 경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과 기억이 이동하는 시간의 흐름이며, 신체가 세계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화면은 완결된 풍경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감각의 장으로 펼쳐진다. 관람자는 그 길 위를 걷듯 작품 앞에 서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기억과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갤러리위 박경임 대표는 "권지안의 회화는 설명보다 체험을 요구한다"며 "조용히 울리는 허밍처럼, 작품 앞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환기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풍경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자연의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권지안의 화면에서 그것은 우리가 미처 언어로 붙들지 못했던 감정의 흔적이며, 잊고 지냈던 내면의 시간을 다시 불러내는 울림이다. 'HUMMING ROAD'는 그 울림을 따라 걷는 감각의 여정으로, 관람객을 또 다른 풍경 속으로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