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박선아 칼럼니스트 |사람은 대개 중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우리는 늘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학업과 취업, 결혼과 양육, 생계와 책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선택을 숙고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은 곧바로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고, 인생은 쉼 없이 전진하는 열차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열차는 속도를 늦춘다. 몸은 이전처럼 반응하지 않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그때 인생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온 것일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중년이라는 시기에 가장 또렷하게 들린다. 중년은 단순한 나이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정하라는 요청이다. 그래서 중년은 흔히 위기의 시기로 오해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장의 두 번째 출발선이다. 중년은 삶의 구조 자체가 변하는 시기다. 신체적 에너지는 점차 줄어들고, 사회적 위치는 안정되거나 흔들리며, 부모는 돌봄의 대상이 되고, 자녀는 독립을 준비한다. 책임은 여전히 무겁지만, 통제력은 줄어든다. 인생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감당하는 힘은 약해진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경험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 인생은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든 건 아닐까."
그러나 이 불안의 본질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과연 충분히 의미 있었는가?’, ‘앞으로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중년을 통과하면, 사람은 점차 삶에 대한 열정을 잃는다. 반대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새로운 깊이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은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필자는 중년 시기에 클래식 음악 듣기를 권한다. 중년은 인생의 위기가 아니라 성숙의 문턱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후반부 인생의 밀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중요한 시기에,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가장 좋은 동반자 중 하나로 클래식 음악 듣기를 권한다.
음악 취향은 인생관의 반영이다. 사람의 음악 취향은 다 다르다. 그러나 그 사람 각각의 취향을 살펴보면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젊은 시절 우리는 빠르고 강한 음악에 끌린다. 즉각적인 감정 표현, 직설적인 메시지, 강렬한 리듬은 젊음의 에너지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중년에 접어들면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뀐다. 사람들은 점점 더 구조를 듣고, 시간을 듣고, 침묵을 듣는다. 음 사이의 여백에 귀를 기울인다. 음악 속에 담긴 인간의 흔적을 읽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에는 투쟁보다 성찰이 많다. 젊은 시절의 베토벤이 운명과 싸우는 전사였다면, 후기의 베토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철학자에 가깝다. 그 음악에는 고독과 초월이 공존한다. 인생의 고통이 어떻게 존엄으로 승화되는지 음악으로 느낄 수 있다. 브람스의 후기 작품에는 인생을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제가 담겨 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슬픔조차 품위 있게 다룬다. 단단한 형식을 기반으로 안정감 있으면서 풍부한 감정, 특유의 우수한 감정, 불안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에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고요한 수용이 스며 있다. 절망도 체념도 아닌, 투명한 평온이다. 이 음악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생은 승부가 아니라 이야기이며, 경쟁이 아니라 여정이라고. 이 몇 작곡가들의 음악을 간단히정리 해보면 중년에게 필요한 음악은 더 이상 기교적이고 폭발력있는, 에너지 음악이 아니라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클래식 음악이다.
사실 듣고 싶어도 몰라서 못 듣는 사람들도 많이있다. 간단히 추천 해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바흐 평균율, 쇼팽 녹턴이나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브람스 인터메쪼, 슈베르트 D.960 등 친숙한 음악 듣기를 권한다. 아울러 인생음악으로 말러교향곡, 바흐 마태수난곡, 베토벤 현악 4중주 후기작품도 어떨지...
사실 필자에게 인생음악으로 말러음악은 와 닿지 않느다. 아직 젊어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길어서인지 취향이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음악의 구조, 정서, 철학 자체가 일반적인 감상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어렵다”, “까다롭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길이가 길다” 등 힐링이 되는 클래식 음악이라기보다 각성하는 음악 같기도 하다. 그러나 말러 음악은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할 만큼 난해한데도 대중적인 거의 유일한 작곡가 아닐까? 그래서 인생 음악으로 말러 교향곡을 추천한다.

클래식 음악이 가르치는 ‘깊이의 논리’
현대 사회는 속도의 논리에 지배된다. 빠를수록 좋고, 많을수록 성공이며, 즉각적인 성과가 가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이 논리에 저항한다. 교향곡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수십 분이 걸리고, 하나의 악장이 펼쳐지기까지 긴 연습시간이 필요하다. 주제는 반복되고 변주되며, 서서히 성숙한다. 음악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이 구조는 중년의 삶과 닮아 있다. 젊은 시절이 속도의 시대라면, 중년 이후는 깊이의 시대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생의 완성도는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고. 중년이 힘든 이유는 아마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은 서두르지않고, 기다리게 만들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급해지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 또 여유를 가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관계를 재해석하는 음악
중년은 인간관계가 재편되는 시기다. 많은 관계가 사라지고, 일부 관계만 남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관계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할 기회도 얻게 된다. 더 이상 중년의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갈등으로 지치게 된다. 실내악은 관계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현악 4중주에서 어느 악기도 주인공이 아니다. 모두가 주인공이며 동시에 조연이다. 서로를 듣지 않으면 음악은 무너진다. 이 음악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관계란 지배가 아니라 조율이며,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을.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관계속에서 성숙 해 진다. 대화가 깊어지고 사고가 정제되며 삶의 품격이 높아진다. 이는 은퇴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쟁력이다. 중년은 무너지는 시기가 아니라 단단해지는 시기이며 은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준비해야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만의 ‘내적 음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중년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인생의 시작이다. 젊은 시절이 생존의 시대였다면, 중년 이후는 의미의 시대다.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클래식 음악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삶의 후반부는 축소판이 아니다. 그것은 완성판이다. 경험이 지혜로 바뀌고, 상처가 통찰로 변하는 시간이다. 그 길 위에서 클래식 음악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다. 요란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중년의 성장에는 소음보다 침묵이, 성과보다 성찰이, 속도보다 깊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가치를 가장 온전히 담고 있는 언어가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