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2026년 새 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례적인 색으로 물든다. 고요하고 장엄한 회색의 외벽은 2월 27일부터 3월 8일까지 10일간 블랙핑크의 상징색인 '핑크빛'으로 밝아진다. K-팝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블랙핑크(BLACKPINK)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엄의 만남. 이름하여 '국중박 X 블랙핑크' 프로젝트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이번 협업을 글로벌 문화 소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했다. 블랙핑크의 새 앨범 발매 시점인 2월 27일 오후 2시에 맞춰 시작되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문화유산을 동시대 대중문화의 언어로 번역하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사의 핵심은 박물관 외부 공간을 활용한 야외 조명 연출이다. 국중박 열린마당과 건물 외벽은 행사 기간 동안 매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핑크빛 조명으로 물든다. 관람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낮에는 고전의 시간을 간직한 박물관이, 밤이 되면 세계적 팝 아이콘의 색채로 변모하는 이중적 풍경은 그 자체로 강렬한 상징성을 지닌다.
박물관 내부 '역사의 길'에는 리스닝 존(Listening Zone)도 마련된다. 2월 27일 오후 2시부터 운영되는 이 공간에서는 블랙핑크의 새 앨범 'DEADLINE' 수록곡을 감상할 수 있다. 타이틀곡 'GO'를 비롯해 선공개곡 '뛰어(JUMP)', 'Me and my' 'Champion'등 총 5개 트랙이 흐른다.
유물과 음악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박물관의 시간성과 대중음악의 동시성을 교차시키는 장치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문화재 옆에서 2026년의 음악을 듣는 경험은,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협업의 또 다른 축은 음성 도슨트 프로그램이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직접 참여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8점을 소개한다. 전시장 내 해당 유물의 QR 코드를 스캔하면 멤버들의 목소리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지수와 제니는 한국어 도슨트를 맡았고, 로제는 영어 버전 녹음에 참여했다. 리사는 태국어 도슨트를 담당하며, 태국어 콘텐츠는 3월 중 공개될 예정이다. 이는 한국어·영어를 넘어 동남아시아 관람객까지 포용하는 다층적 언어 전략으로 읽힌다.

세계 각지에서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친숙한 아티스트의 음성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에 대한 첫 인상을 K-팝 스타의 목소리로 접하는 경험은 젊은 세대에게 특히 강력한 접점을 제공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블랙핑크가 소개하는 유물과 멤버 사진이 담긴 한정 엽서도 선착순 배포된다. 단순 굿즈를 넘어, 문화유산과 대중문화가 함께 기록되는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블랙핑크는 약 1억 명에 이르는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아티스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협업을 통해 해외 관람객에게 한국 문화유산을 보다 자연스럽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K-팝이라는 세계 공통 언어를 매개로 박물관의 문턱을 낮추고, 문화유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YG엔터테인먼트 측은 "K-팝의 역사를 써 내려 온 블랙핑크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엄의 만남"이라며 "음악을 넘어 문화유산으로 영역을 확장해 글로벌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한국 문화 콘텐츠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류가 드라마와 음악을 넘어 미술관·박물관 영역으로까지 스며드는 흐름 속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K-컬처 생태계의 입체적 진화를 상징한다.
한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협업은 박물관이 지켜온 문화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찾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이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세계 시민과 문화로 소통하는 열린 박물관으로서,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K-뮤지엄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오랫동안 '보존'의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2026년 봄,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결'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고대의 유물과 현대의 아이돌, 전통과 세계적 팬덤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10일.
핑크빛으로 물든 외벽은 단순한 색채 연출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화가 과거를 딛고 현재와 대화하는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