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가을의 정취가 깊어가는 2025년, 서울 무대가 특별한 음악회로 물든다. 21세기 현대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명작들이 한 무대에서 울려 퍼진다. 여기에 대한민국 대표 영화음악가 이지수의 신작이 세계 초연으로 더해져, 고전과 현대, 유럽과 한국, 영화와 클래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규모 무대가 마련된다.
이번 공연은 동시대 음악의 상징이 된 리히터, 영화 음악 자체를 독립된 예술로 끌어올린 모리코네, 그리고 한국 영화음악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일군 이지수가 함께하는 진정한 ‘시네마틱 사운드 스페셜’로 평가된다.
영국 출신의 막스 리히터는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로 꼽히고 있다. 발레, 영화, 드라마를 아우르는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그의 음악은 헐리우드 감독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수많은 영화에 삽입되었다.
대표작 On the Nature of Daylight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비롯해 컨택트, 애드 아스트라 등 굵직한 작품 속에서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의 초기 대표작 November가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의 협연과 함께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평단으로부터 ‘포스트 클래식의 기념비’라 불린 작품이 드디어 한국 무대에 오른다.
‘영화음악의 신화’로 불린 엔니오 모리코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1900 등 수많은 영화 속 선율로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영화의 내러티브에 기반해 음악을 통해 감정의 심연으로 몰입하게 하는 독보적인 작곡가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Deborah’s Theme, Cinema Paradiso, Gabriel’s Oboe, 그리고 Playing Love 등 모리코네의 대표작들이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Orchestra the Original)의 연주로 되살아난다. 스크린을 넘어 독립적인 예술로 자리 잡은 모리코네의 선율은 여전히 전 세계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울림을 전한다.
이번 무대의 또 다른 축은 한국 영화음악의 선두주자 이지수다. 올드보이, 왕의 남자, 건축학개론 등 한국 영화사를 빛낸 대표작들의 주요 음악을 작곡해온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SF 드라마 고요의 바다의 테마 음악을 이번 무대에서 세계 초연한다.
특히 영화 올드보이의 OST Cries and Whispers 역시 다시 연주돼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예정이다. 한국 영화음악이 세계 무대와 당당히 호흡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을 이끄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예술감독 아드리엘 김이다. 그는 유럽 주요 악단과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지휘자로, 현대음악의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왔다.
협연자로 무대에 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레오폴드 모차르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등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은 연주자다. 현재 이화여대 음악대학 관현악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무대에서는 리히터의 November를 통해 섬세하고 입체적인 해석을 선보인다.
이번 무대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2021년 창단 이래 한국의 독자적 오케스트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현대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왔다. 막스 리히터와 아르보 패르트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국내 초연해 평단으로부터 “미니멀리즘 음악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드리엘 김의 지휘 아래 이번 무대에서도 전통과 현대, 영화와 클래식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시도를 이어간다. 병원, 교육기관, 문화재단 등과 협업하며 사회적 나눔에도 앞장서온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이번 공연을 통해 다시 한번 음악의 보편성과 예술의 가능성을 증명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공연은 단순한 영화음악 콘서트를 넘어, 현대음악과 고전, 스크린과 무대, 유럽과 한국이 교차하는 장르적 융합의 장이 된다. 관객들은 음악이 지닌 시대 초월적 힘을 경험하며, 영화와 삶 속에 스며든 선율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서울의 가을밤, 관객들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위대한 선율과 마주하게 된다. 막스 리히터의 차갑지만 따뜻한 현대음악,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 영화 선율, 이지수의 감각적인 한국적 정서가 어우러져 만들어낼 이번 무대는 올해 가장 기대되는 클래식·영화음악 공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