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다가오는 가을,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무대에 러시아 음악의 열정과 서정이 두 대의 피아노를 통해 되살아난다. 피아니스트 김태정과 주희선이 준비한 듀오 리사이틀 'Russian Passion'은 20세기 격동의 러시아와 낭만주의의 정수를 담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 피아노 음악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 고뇌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두 작곡가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감정과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김태정과 주희선은 이러한 음악의 내면을 두 대의 피아노라는 형식을 통해 입체적이고 장대한 스케일로 재현할 예정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은 영화 닥터 지바고와 드라마 OST 등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곡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선율 뒤에는 소련 시대의 불안과 아이러니가 깃들어 있다. 이어지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Op. 6)은 젊은 작곡가의 실험적 열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재치와 환상이 교차하며, 마치 시대의 그늘 속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외치는 듯하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Op. 34-14)는 '가사 없는 노래'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목소리 대신 순수한 선율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두 대의 피아노로 편곡된 이번 무대에서는 가사보다 더 강렬한 서정과 서사가 피아노 음향으로 확장될 것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Op. 17)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낭만성과 화려한 기교가 응축된 대작이다. 서정적인 로망스와 폭발적인 타란텔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피아노 듀오 레퍼토리 중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로, 공연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김태정은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남가주대학교(USC)에서 연주석사와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 시절 학문과 연주를 두루 인정받으며 장학금을 수혜했고, 귀국 후에는 학술 연구와 연주 활동을 병행하며 피아노 듀오와 현대음악 해석에서 독보적 위치를 다져왔다. 김태정은 이번 무대에서 학문적 깊이와 함께 삶의 연륜이 담긴 섬세한 해석을 선보일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주희선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줄리어드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이어 콜럼비아대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카네기홀,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 홀, 체코 필하모닉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며 국제적인 경력을 쌓았다. 귀국 후에는 예술의전당, 금호아트홀 등에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관객과 깊은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듀오'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개성과 감각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러시아 음악의 열정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피아노 듀오는 단순히 두 명의 연주자가 무대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호흡과 해석이 끊임없이 맞물려야 하는 고도의 음악적 대화이다.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이러한 대화 속에서 더욱 극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한편 이번 리사이틀은 단지 두 피아니스트의 협연 무대가 아니라, 러시아 음악의 역사와 정서를 오늘날의 청중에게 새롭게 전하는 음악적 여정이다. 격정과 서정, 기교와 사색이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러시아 예술의 깊이를 체험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