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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선수보다 팀 ②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사람들은 1966년 영국팀을 4-3-3 전형으로 싸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대표였던 노비 스타일스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을 수비형 미드필더인 앵커맨으로 기술한다.

그의 앞에는 피서트, 찰턴, 그리고 볼이 공격시 헌트와 그리브스를 지원하게 했다.

최근 기술하기 좋아하는 4라인 시스템으로 굳이 해석한다면 4-1-3-2가 되는 것이다. 

 

이 4-4-2 시스템은 약팀을 상대로할 때는 다시 4-2-4로 전환한다.

물론 조금 더 강하게 몰아갈 때는 2-4-4 시스템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램지는 보통 강팀과 맞서기 위해 윙을 후퇴시켰다.

포루투갈과의 4강전에서 스타일스가 에우제비오를 전담한다.

스타일스의 경기는 2002년 한국의 김남일 선수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램지의 영국은 기존의 영국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 팀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이전 영국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윙을 뒤로 물러나게 해 윙 없는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1966년을 기준으로할 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 점유율이 높은 팀이었다.

세번째는 3명의 미드필더의 공격가담은 순간적인 맨오버를 이끌어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데 충분히 일조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램지는 자신의 팀 전술에 맡는 선수를 발탁했다.

당시 리버풀의 윙이었던 톰프슨은 1962년 월드컵에서 하얀펠레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램지의 윙을 희생하는(또는 미드필더로 내리는) 전술에서 톰프슨은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대표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른바 '웸블리골'이라고 불리는 가장 논란이 많은 골이 있었지만 1966년 월드컵 우승 덕분에, 선수 선발 권한을 쥐고 있던 램지의 팀 전술에 필요한 선수를 발탁한다는 모습은 협회의 더 뛰어난 선수도 있고 발전가능성도 높은 선수가 충분히 있음에도 축구협회의 압력 때문에 제대로 된 테스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남겨준다. 

 

아무튼 전술적으로 영국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변화하는 전술에 뒤지기 시작하면서 램지 역시 대표팀을 떠나게 된다.

지금도 영국 국가대표팀 감독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는 있지만 역사상 가장 당대에 인기가 없던 감독 램지가 물러나면서 한마디를 한다.

"나는 경기에 이기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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