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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낭만주의 시대의 종말 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축구의 룰중 오프사이드라는 것이 있다.

오프사이드 룰은 상당히 중요하지만 이보다 왜 오프사이드 룰이 필요할까.

혹자는 오프사이드에 대해 축구가 농구나 핸드볼이 되지 않게 만드는 규칙이라고 말한다. 

 

이번 이야기는 1920년대 영국으로 돌아가서 시작한다.

1866년 처음 제정된 오프사이드 룰은 패스를 받을 때 앞에 최소 두명의 필드플레이어가 있을 때 경기를 지속한다(온사이드)는 규칙이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자 오프사이드 트랩은 경기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가 돼 버린다. 

 

영국은 롱볼과 드리블 위주의 경기를 진행해 왔다.

여기서 당시 경기는 오프사이드 트랩에 실패하더라도 드리블하는 최전방 공격수를 수비할 수 있는 또 한 선수가 존재했다. 

 

노츠 카운티를 비롯한 일부 클럽에서 시작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한 전술은 점점 '지루한 영대영 게임'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특히 허즈페스와 맥크라켄이라는 걸출한 백을 보유한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점점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1925년 시즌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경기당평균실점은 2.58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런 재미없는 경기는 관중 감소로 이어져 클럽 존폐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결국 오프사이드 룰은 패스를 받을 때 앞에 1명의 필드플레이어도 존재하지 않을 때로 변화한다.

1925~26 시즌부터 적용된 이 룰은 일단 경기당평균실점을 1점 가까이 끌어 올린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지금도 당시와 비슷한 오프사이드 룰을 갖고 있는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의 실패는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라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낭만주의에서 승패에 집착하는 경기로의 전술변화에 대해 허버트 채프먼은 만일 경기결과가 시합에서의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면 전반적인 경기수준은 눈에 띠게 높아질 것이라고 평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한국의 학원축구에서 성장한 한국의 축구선수의 경기력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최근 유소년 축구클럽 출신 선수들의 성장 속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축구라는 경기 자체가 바로 승패를 가리는 스포츠라는 전제의 오류가 존재한다. 

 

아무튼 오프사이드 룰의 개정은 숏패스 위주의 경기를 롱볼 위주로 바꾸게 만든다.

이 때 채프먼이 감독으로 있던 아스널은 롱볼 위주의 경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경기력을 보인다.

채프먼은 대체로 역습 위주의 경기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영국축구협회는 정석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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