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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다뉴비언 스타일과 남미 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지금까지 피라미드 전술의 탄생과 진화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도 피라미드 전술에 대한 이야기다. 

 

왜 피라미드 전술에 이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할까.

바로 이 피라미드 전술에서 남미의 기술축구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미 축구는 19세기 후반에 유럽과 남미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축구전술은 비록 패스게임을 수용한 2-3-5 전술이지만 영국축구는 여전히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술이고 1903~5년 사이 영국 클럽들의 유럽 순회경기에서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중부유럽은 조금 달랐다.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숏패스 스타일이 정착한 것이다.

여기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스코틀랜드인인 지미 호건이다.

1950년대 헝가리팀의 감독(후일 헝가리팀의 전술도 기술할 예정)인 구스타브 세베시는 "지미 호건이 가르친 대로 했다."고 말한다. 

 

번리 태생의 호건이 선수생활을 할 때 영국은 훈련을 싫어했다.

기본적인 체력훈련인 달리기 같은 것은 했지만 공을 갖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을 갖고 훈련을 하는 것은 해롭다는 말까지 있었다.

1904년 가장 많이 공을 갖고 훈련을 했던 토트넘은 일주일에 이틀만 공을 갖고 훈련을 했다.

당시의 속설은 주중에 공을 갖고 운동을 하면 주말에 공에 대한 열망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호건은 경기 중 한번은 드리블에 이어 슛을 했는데 이 공이 골대 위로 한참 넘어가버렸다.

이에 의문을 품은 호건은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10번 중에 한 번 성공을 하면 잘한 것이므로 계속 시도하라고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호건은 결국 이것은 기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1912년 호건은 오스트리아 축구의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유고 메이슬을 만난다.

메이슬과 호건은 2-3-5 시스템은 문제가 없으며 다만 더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팀은 고지식한 전술을 사용해 상대에게 움직임이 읽힌다는 점에 의견을 모은다.

결국 공을 끌지 않는 빠른 패스의 조합이 드리블보다 바람직하며 자신에게 오는 패스를 컨트롤, 재빨리 넘겨주는데 개인기가 필요하다고 합의한다.

또한 호건의 롱패스는 생각 없이 공중으로 멀리 차내는 것이 아니고 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 대표팀, 부다페스트 MTK를 잠시 이끌었던 호건은 1차세계대전 후 영국으로 돌아간다. 

 

메이슬은 전쟁 이후에도 호건의 전술을 발전시켜나간다.

브라이언 글렌빌(후일 브라질 축구를 발전시킨 사람)은 메이슬의 축구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골을 넣는 것은 백 가지쯤 되는 복잡한 패턴을 만들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스타일을 다뉴비언 스쿨이라고 칭하는 독자적인 유형으로 1930년대 오스트리아 원더팀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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