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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드리블과 패스게임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잠시 말년병장이 빠진 군대스리가 이야기를 해보자.

경기 진행은 간단하다.

고참이 공을 받는다.

멋진(멋지다고 생각되는) 메시처럼 온갖 개인기(정확하게는 앞에서 피해줌)로 골대를 향해 드리블을 통해 돌진을 한다.

갖 자대배치를 받은 이병이 공을 막는(시늉을 한)다.

호날두처럼 멋진 슛을 한다.(호날두의 무회전킥이 아닌 전혀 체중이 실리지 않아 무회전인 슛임)

골키퍼는 역모션에 걸려(걸린척하며) 아슬아슬하게 막지 못한다. 

 

19세기 중반의 축구는 이와 비슷했다.

학급 상급생이 공을 몰며 공격을 한다.

1~2명의 하급생은 해킹(정강이 걷어차기)을 해서라도 이를 막는다.

패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이 당시 중요했던 것은 공격수가 태클로 공을 잃었을 때 이를 받아 계속 골문으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축구전술에서 백업은 바로 이것이다. 

 

대형은 이로서 정해진다.

가장 쉽게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15인제 럭비에서 수비수 4명을 빼고 그림을 그리면 된다. 

 

1866년 영국에서는 축구의 룰이 개정된다.

이 룰 개정에서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킹의 금지다.

아마도 이 룰이 없었다면 현재의 선수들은 대부분 2~3년 내에 다리 골절 때문에 선수생활을 끝내야 할 뿐 아니라 상당수가 휠체어 신세를 져야할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개정은 오프사이드룰이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룰이 축구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한 것은 이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다. 

 

당시 전형은(전형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대체로 1명의 백, 1명의 하프백, 1명의 플라이킥과 나머지 공격수로 이뤄져 있는 이른바 1-2-7 시스템이다. 

 

이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일치된 행동"을 통한 경기를 선호했다.

이 일치된 행동은 1872년 글래스고우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선발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경기 전 영국의 전문가들은 영국 선수들이 스코틀랜드 선발에 비해 평균적으로 6킬로그램정도 무겁고 더 빠르기 때문에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2-6 전형으로 나선 스코틀랜드는 영국에게 맞부딪치기보다는 공을 돌리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결과는 0:0이다. 

 

영국에서 패스게임은 상당히 낯선 스타일이다.

당시 셰필드의 한 선수가 헤딩을 하자 이것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패싱게임은 후일 스코틀랜드 소속의 퀸스파크가 1870년 영국으로 소속을 옮겼을 때 이미 충분히 익숙한 스타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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